<통일칼럼>핵 개발 시인과 남북경협

 ◆서재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uhjj@kinu.or.kr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함으로써 북한의 핵문제가 다시 일파만파가 되고 있다. 지난 92년 11월 미국이 처음으로 북한의 영변 핵시설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시작된 북한의 핵문제가 지난 10년 동안 지속된 문제임을 감안한다면 이번의 핵개발 시인은 문제의 궁극적 해결의 계기가 될지, 더 큰 문제의 시작이 될지가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 10년 동안 북한 대외정책의 가장 큰 관심은 대화를 통해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게 하고 미국의 통제 아래 있는 국제 금융기구들로부터 외자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북한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북한 내부 힘으로는 메울 수 없는 자원·기술·자본을 외부에서 수혈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기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함으로써 미국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는 있었지만 남한을 고립시키고 벼랑끝 전술을 구사함으로써 남한의 지원없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실패하고 경제난 해결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나진·선봉에 특구를 설치했으나 외자유치 목표량 70억달러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참담한 실패를 하고 말았으며, 대량 아사자를 내는 경제난에 직면했다.

 북한은 2000년 정상회담 이후 전략을 바꿔 남한을 통해 미국에 접근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남한을 거치고 일본을 거쳐서 미국으로 가는 전략으로 바꾼 것이다. 또 내부체제의 변화없는 외부와의 관계 개선은 개혁·개방의 의지가 없다고 외면받아오던 터에 북한은 지난 7월 1일을 기해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단행, 기존 사회주의 사회보장제도를 폐지하고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제를 도입함으로써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근간을 허무는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또한 신의주 행정특구를 설치해 완전한 자본주의 체제를 북한 영토의 일부에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관심은 딴 데 있었다. 부시 행정부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출범부터 자국의 미사일방어계획(MD)에 집착해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미사일 개발 계획을 미국 MD계획 추진의 명분으로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북한을 비난만 했지 대화를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기피해온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대화에 끌어들이기 위한 고단위 처방으로 선택한 것이 핵개발 시인이다. 과거 NPT에서 탈퇴한 것과 마찬가지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핵무기를 이미 보유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게 함으로써 이제 미국이 북한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을 유도한 것이다.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가 방북했을 때 북한은 핵무기 개발 사실과 핵문제, 미사일 문제, 재래식 무기 등 모든 안보 관련 문제와 미국이 북한에 가하고 있는 경제제재 문제를 일괄타결하자는 제의를 동시에 내놨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다는 사실만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의중이 왜곡된 채로 국제사회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사실은 북한이 핵무기 포기, 미사일 개발 포기, 심지어는 재래식 무기 감축까지 포함해 미국이 우려해온 군사문제를 모두 양보할테니 미국이 북한에 대해 조이고 있는 제재를 중단하고 대북 적대정책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이 문제의 본질일 수 있다.

 북한의 핵문제는 파장이 확대되기보다 미국과의 대화국면으로 급속하게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미국은 핵을 가진 북한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가 불가피하며, 북한으로서는 과거 미사일 계획 포기 대가로 30억달러를 요구한 것이 미국에 전혀 수용될 기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물질적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적 해결만을 희망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듯하다.

 남북관계와 남북경협에 일시적 후퇴는 있겠지만 보다 밝은 방향으로 진전될 수 있는 전기를 맞았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