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 도쿄대 연구교수, wi@e.u-tokyo.ac.jp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야기다.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독일 군수공장의 생산력을 파괴하기 위해 철저하게 공습을 단행했다. 물론 당시에는 대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여 연합군의 승리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평가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독일 군수공장의 생산성이 공습 이전보다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연합군의 공습은 각종 군수사령부에 보관되어 있던 통제자료를 불태워 결과적으로 공장 통제를 불가능하게 했고 이는 각 공장의 자율성을 높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행위를 할 때 반드시 대상의 본질파악과 함께 그 행동을 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엔시소프트의 리니지 등급부여에도 해당된다. 심의위원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PK(Player Killing)라 불리는 상대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는 구조와 PK 후 떨어진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는 장치다.
하지만 심사위원회가 간과한 점이 있다. 그것은 리니지가 원래 ‘골육상잔의 게임’이 아니라 ‘권선징악의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리니지에는 악한 성향의 사용자는 빨간색으로 ID가 표시되고 선한 사용자는 파란색으로 표시돼 있다. 선한 가, 악한가의 차이는 PK를 하는가, 안 하는가 또 잡아서는 안 되는 몬스터(괴물)를 잡는가, 안 잡는가에 달려 있다.
언젠가 인터뷰한 적이 있는 한 리니지의 길드 장(혈맹의 장·길드는 게임내의 사용자 공동체 모임)은 게임내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즉 약한 자를 PK하는 야비한 사람, 다른 사람의 아이템을 훔치는 사람들의 ID를 기록해 이를 다른 사용자들과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자신이 길에 떨어진 아이템을 주워서 떨어뜨린 상대에게 ‘아이템이 떨어졌어요’라며 돌려주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보고 있던 (화면상에서) 사용자들이 감탄하면서 모두들 자신에게 다가와 무엇인가를 넣어 주고 갔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다른 사용자들이 자신의 아이템을 하나 둘씩 이 ‘선한 인간’에게 던져 주고 간 것이었다.
원래 온라인 게임에 등급제를 적용하려는 취지 그 자체는 바람직한 것이다. 청소년들을 폭력적인 게임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은 아이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게임 공간도 무법천지가 아니라 현실사회와 같은 룰이 존재하고 있음을, 또 아직 어린 10대 사용자가 서로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룰을 만들어가고 있는 교육적 기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는 산업의 초기단계라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져 보일지 모르지만 이 시행착오 과정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볼 문제지 게임 자체에서 사용자들을 배제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등급제를 통해서 우려되는 것은 산업으로서의 온라인 게임이 약화될 가능성이다. 온라인 게임은 한국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손꼽을 만한 산업이다. 현재 비디오 게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조차 온라인 게임의 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온라인 게임과 비디오 게임의 개발노하우가 다르고 또 쉽게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합군이 독일 군수공장 공습에서 범했던 우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