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종이 없는 국정감사

 ◆김형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 위원장 kho@kho.or.kr

 

 국정감사장의 진풍경이 사라졌다. 감사장 분위기를 주눅들게 만들던 산더미 같은 자료집들이 말끔히 없어진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 노트북PC와 CD롬이 놓여졌다. 의원들은 노트북PC를 통해 자료를 검색하기도 하고 몇몇 의원들은 아예 준비한 내용을 모니터에 띄워 놓고 질의를 하기도 했다. 이른바 올해의 ‘종이 없는(페이퍼리스)국감’의 모습이다.

 모 일간지에서 과정위 국감과 다른 상임위 국감 현장을 사진 두 장으로 대비해 보도했다. 그 차이는 확연했다. 노트북PC가 놓인 국감장과 얼굴을 가릴 정도로 높이 쌓아놓은 인쇄물로 가득한 국감장은 사뭇 그 분위기가 달랐다. 물론 외관과 감사의 질은 별개의 문제다. 노트북PC로 국감한다고 더 날카롭고 수준 높은 질의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제 국회도 달라져야 한다. 정보사회의 시대정신과 가치를 수용해야 한다. 사실 페이퍼리스 국감은 단지 종이 없는 국감 차원이 아니다. 아날로그 국감에서 디지털 국감으로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되는 것이다.

 먼저 페이퍼리스 국감에서는 그동안 인쇄된 자료집대신 CD롬 형태로 의원에게 제출하게 된다. 디지털화된 자료는 인터넷을 통해 모든 국민에게 제공될 수 있으며 국민들은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소위 전자정부의 핵심 포인트다. 국정감사를 통해 연간 5만여건이 넘는 정부자료가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 거의 사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적 이슈나 중요한 통계자료 몇 가지만 언론에 보도될 따름이다.

 정보는 활용하면 할수록 그 가치는 커지게 된다. 정보에 목말라 있는 국민에게 이를 공개한다면 지식의 승수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다만 법적으로 이런 자료를 완전히 공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므로 하루속히 보완해야 할 문제다.

 둘째는 자료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종이 인쇄물은 목차를 보거나 혹은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자료를 찾기 어렵다. 또 시간이 지나면 그 자료를 다시 활용하기도 곤란하다. 그러니까 의원들이 자료 요구를 할 때 올해 통계뿐만 아니라 지나간 통계치 3∼5년 정도분을 다시 요구하기 일쑤다. 자료활용도를 높이게 되면 이런 폐단을 막을 수 있다. 자료작성을 위해 행정부에서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국감때만 되면 업무가 마비되고 행정공백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반해 디지털 자료는 언제든지 원하는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관도 종이 인쇄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편하다.

 셋째는 경비절감이다. 국정감사 때 제출하는 자료집 제작비로만 부처당 대략 5000만원이 든다고 한다. 과정위의 경우 16개 피감기관의 인쇄비를 1억원 이상 절감시켰다고 한다. 한 개 위원회가 이 정도라면 정부 전체로 볼 때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페이퍼리스 국감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의원보좌진들의 불만이 높았다. 자료를 가공하고 이를 복사하는 데 아무래도 종이자료가 편리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도 처음에는 책상 위의 노트북PC를 어색해 했다. 그러나 국감이 지날수록 마우스를 자유자재로 클릭하면서 자료를 찾는 기쁨을 즐기는 것 같았다. 자신감이 붙은 위원들의 모습에서 디지털 국감의 가능성을 실감했다.

 아울러 인터넷 생중계는 피감기관과 관련업계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국감장이 폐쇄된 공간을 벗어던지고 인터넷 세계로 나아가 네티즌과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즉석에서 네티즌의 의견을 받아들여 장관에게 질의하는 양방향 국감의 길을 터놓았다. 그야말로 열린 국감, 국민과 함께 하는 국감의 시대가 온 것이다.

 앞으로 페이퍼리스 국감에서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먼저 제도적인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자료의 공개 범위와 주체, 서면답변 및 자료의 e메일 발송, 자료요구기간의 조정(현행 7일은 너무 짧다는 견해), 제출자료의 표준화작업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CD롬 제작시 검색기능을 강화하고 개별 자료의 통합화 등의 과제도 해결돼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국감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의 의식과 습관에 있다. 우리 스스로 사고를 혁신하고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디지털 국감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국회사무처가 페이퍼리스 국감을 국회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린다.

 디지털 시대의 키워드는 통제와 지시가 아니라 교류와 협력이다. 디지털 국감이 정착될 때 국회는 파행과 대결의 장소에서 조화와 상생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과정위의 디지털 국감, 이는 정치개혁의 첫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