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민경택 엔비드 대표 ktmin@icomware.co.kr

 

 “항상 제로에서 시작하며 대본이 없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누구도 흥행작을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하며 흥행작은 돈으로도 만들 수 없다. 항상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므로 프리랜서 할리우드 종사자들은 늘 실업상태에서 일한다.”

 미국 ‘할리우드리포터’의 사장이자 편집장인 로버트 다울링은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했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다른 산업과는 달리 잘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들 수 있지만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며 잘못하면 한순간에 망할 수도 있는 설명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전문가 양성을 위해 마련한 미국 UCLA대학 ‘문화콘텐츠 연수 프로그램’이 최근 3주 동안 진행됐다. 연수과정을 통해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해 느낀 점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엄청난 규모와 정밀한 시스템이 두려울 정도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거대자본과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결합시킨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넘볼 수 없는 힘을 가진 골리앗과 같았다. 영화, 책, 음반, TV, 게임, 테마파크, 캐릭터 머천다이징, 패션산업 등 덩치를 키우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고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대규모 제작과 글로벌 유통방식은 미국이 아니면 시도조차 못할 일이다.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미국적 꿈과 이데올로기를 전파시키는 또 다른 세계 지배 수단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할리우드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7800만달러인데 영화 제작사가 얻는 극장 평균수익은 2000만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왜 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을 당연히 할 만하다. 확률상 도박에 가깝다고 밖에 할 수 없으나 하나가 성공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기대효과는 가히 메가톤급이다. 그것이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매력이다. 흥행작품의 경우 극장 수익의 5배 이상을 머천다이징과 TV, DVD, 비디오 등을 통해 거둬들인다.

 마케팅 비용도 만만치 않다. 80년대 영화 제작비는 평균 1000만달러 정도였는데 지금은 마케팅 비용만도 편당 3000만∼3500만달러에 이른다. 할리우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을 ‘예술이 아니라 비즈니스’라고 말한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대로 엔터테인먼트 상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비즈니스 시스템은 가난한 소수의 창작그룹을 발굴해 세계시장을 상대로 팔 히트상품을 만들어낸다. 주요 영화 제작사나 방송사는 자체 창작그룹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창작그룹은 프리랜서로 일한다. 따라서 제작사나 방송사에는 매일 수십명 혹은 수백명의 작가 혹은 창작그룹이 기획서를 들고 찾아온다. 이때 메이저 제작사나 방송사는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하면 대개 제작과 관련한 모든 판권을 산다. 이런 시스템은 작가나 디자이너 등 창작그룹에는 더 많은 기회가 된다. 그래서 창작그룹을 육성하기 위한 에이전시사업이 존재한다. 에이전시는 저작권 관련 계약에서부터 모든 업무를 지원한다. 창작그룹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창작에만 매진하면 된다.

 우리 문화콘텐츠업계가 생각해야 할 것은 먼저 시장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배급회사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해 제작의 상당부분을 국내업체가 담당하고 나머지는 파트너사가 담당하는 형태의 결합도 바람직하다. 가깝게는 아시아시장을 공략해 콘텐츠의 판매 유통망을 구축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할리우드 배급업자들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아시아시장 정도의 큰 시장에서 성공한 작품을 요구하고 있다. 또 미국의 독립영화사 혹은 창작그룹처럼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식상한 전세계 소비자들을 상대로 무엇인가 새로운 소재, 색다른 눈요깃거리를 보여줘야 한다.

 문화콘텐츠산업에도 정글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회는 항상 있다. 자본과 힘이 없을 때에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으면 협상에 힘을 가질 수 있다. 일본은 ‘닌자 거북이’ 고유 캐릭터로 전세계에 어필하지 않았는가. 국내 문화콘텐츠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빠른 외형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차근차근 비즈니스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아울러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