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수 전기제품안전진흥원 이사 jhhan@esak.or.kr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제조물 책임(PL:Product Liability)법의 제8조는 민법의 적용과 관련된 것이다. 즉, 제조물의 결함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의 규정에 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실책임주의에 기초를 둔 현행 민법의 불법행위책임제도를 새롭게 보강하여 결함을 책임요건으로 하는 무과실책임주의로 전환하는 제조물책임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는 민법의 불법행위책임제도의 특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PL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현행 민법에서 규정한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민법에 의한 보족적인 적용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으로서 특히 과실상계(過失相計)를 들 수 있다. 이는 손해배상청구에 있어서 피해자. 또는 채권자에게도 손해발생과 관련하여 과실이 있다면 그것을 고려하여 손해배상액을 적당하게 경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탕감하도록 한 장치다. 피해자가 손해의 발생이나 확대에 일조한 것을 감안하여 그 부분만큼은 양측에서 분담해야 한다고 하는 공평의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에 관하여 채권자나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을 때에는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산정함에 있어 이를 참고하여 알맞게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무자나 불법행위의 가해자는 각각 채권자나 피해자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손해를 배상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의 발생에 채권자나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는 경우가 흔히 있을 수 있다. 이때는 과실을 상계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피해자가 차도를 무단 횡단하다가 차에 치어 교통사고가 발생한 경우와 같은 것이다. 또는 채권자나 피해자의 부주의로 인하여 이미 발생한 손해를 보다 크게 한 사례도 있다. 부상을 당한 피해자가 치료를 게을리하여 상처를 더욱 악화시킨 경우다. 이 같은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산정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사정을 참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민법은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대해 ‘배상금액을 감액시킬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배상금액을 전부 면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불법행위의 경우에도 이것을 준용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은 PL법에서는 제조자가 배상해야 할 손해액을 산정함에 있어 피해자의 고의이든 혹은 아니든 그 과실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전기용품안전관리법에서 강제인증 품목으로서 가전제품이 대부분인 전기용품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용자가 전기용품을 사용함에 있어서 오용, 또는 남용을 한 경우 제품의 설명문이나 사용상 주의사항이나 경고문 등을 전혀 읽지 않았거나, 혹은 경시하거나, 완전히 무시하고 사용한 경우가 될 것이다. 이 경우에 고려되는 피해자의 과실은 과실책임에 있어서 책임요건으로서의 과실과 같은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고, 주의 의무의 위반 및 태만, 즉 넓게는 피해사용자 측의 부주의로 해석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소비자의 과실은 부주의에 대한 형법적인 비난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전에 아무리 주의를 하여도 결과의 발생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는 경우에는 일종의 불가항력적 사례로 넓은 의미에서의 사용자 측의 부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결국 제조업자 등이 책임을 지고 배상해야 할 것이다.
제조물의 결함을 청구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책임에 있어 과실상계를 적용하는 것은 절대로 방해요인이 아니므로 현행 민법에 의하여 능히 보충적으로 준용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타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하여도 현행 우리나라 민법의 규정이 그대로 적용하게 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