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미국-무선 네트워킹 칩 `춘추전국`

 가정에 있는 단말기 한대로 각종 케이블 채널과 웹 사이트를 여러대의 스크린으로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분산전송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다. 자동차로 이른바 ‘정보주입(info-fueling)’ 중계소 옆을 지나칠 때 지도와 MP3 음악파일, 상세한 교통정보를 다운로드하는 날도 곧 다가올 전망이다.

 ‘802.11a’로 알려진 통신 표준을 기반으로 한 이 같은 청사진의 고급 무선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한창이다. 많은 칩 제조업체들은 모든 종류의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조그맣고 값싼 실리콘 조각 위에 무선 기술과 디지털 신호처리 기술을 통합집적하는 기술을 개발중이다.

 수십여개의 소규모 신생업체들은 인텔과 브로드컴과 같은 대형회사를 상대로 오는 2006년이 되면 10억달러 정도로 성장할 무선 네트워킹 칩 시장에서 칩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트너데이터퀘스트의 선임 애널리스트 조 번은 “이 칩이야말로 반도체 산업에서 장래가 분명히 밝은 부분”이라고 단언했다.

 ‘와이파이’라고도 알려진 802.11 계통의 기술 표준을 중심으로 설계된 특수카드를 설치하면 무선 신호를 기지국에 전송, 비슷하게 설치된 다른 컴퓨터나 기기와 통신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지국은 인터넷이나 사내 네트워크로 들어가는 교량역할을 한다. 802.11b라고 알려진 현세대 와이파이 기술은 기업 캠퍼스나 카페, 공항에서 무선 네트워크 접속을 제공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이 기술은 데이터 용량이 작아 비디오나 복잡한 애플리케이션의 실용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밀피다스에 있는 인터실과 아기어 같은 대형업체가 현재의 802.11b 기술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반면 신생업체들은 이보다 더 빠른 형태의 와이파이 기술인 802.11a와 802.11g에 주력하고 있다.

 투자은행 럿버그에 따르면 무선 네트워킹 칩 개발업체 40여개사가 지난 2년 동안 3억8500만달러의 벤처 투자를 유치했다.

 이 분야 유력기업 가운데 하나인 애더로스는 802.11 기술의 세가지 형태인 802.11a와 802.11b, 802.11g를 3개의 칩으로 통합한 칩세트를 개발했다. 애더로스는 지금까지 9800만달러를 조달했으며 인텔을 포함해 자사 와이파이 칩세트를 구매하는 대형 고객사들도 확보했다. 이 회사는 아울러 팰러앨토에 있는 자사 연구개발센터에서 무선 컴퓨팅 기능을 갖춘 메르세데스벤츠차 개발을 위해 다임러크라이슬러와 공동연구를 진행중이다.

 애더로스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스탠퍼드대 여교수이기도 한 테레사 멩은 자신은 4년전 저비용 무선칩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확신하고 이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최근 300㎒ 주파수를 무허가 주파수로 일반에게 공개해 저비용 칩 제조 기술을 통해 단일 칩에 기능을 집적하는 기술의 개발을 더욱 용이하도록 해주었다.

 팰러앨토에 사무실 하나만 두고 있는 초라한 신생업체 베르마이테크놀로지스의 사장 겸 CEO인 브루스 생귀네티는 자사가 2개의 칩으로 구성된 칩세트에 802.11a와 802.11b 기술을 누구보다 먼저 상용화시킬 업체라고 자신했다.

 베르마이는 지난해 3월 생귀네티를 비롯해 미네소타대 라메시 하르자니 교수, 재문 교수 등이 공동으로 설립했다.

 생귀네티 사장은 “베르마이가 뒤늦게 시작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실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베르마이는 현재까지 2000만달러의 펀딩을 받아 애더로스와 똑같은 기술 원리를 이용해 크기가 더 작은 2개의 칩으로 된 카드에 많은 기술을 집적했다. 생귀네티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802.11a 칩을 연구하는 대다수 기업들이 아직까지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802.11a 칩 시장은 무선 칩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802.11b 칩 시장보다 훨씬 작다. 조사회사인 인스탯/MDR는 올해말까지 802.11b 칩이 1600만개, 802.11a를 이용한 칩은 20만개 정도 팔릴 것으로 예상했다.

 인스탯/MDR의 수석 애널리스트 앨런 노지는 “802.11은 누구나 보유해야 하는 그런 일반 목적의 기술이 아니다”며 “이 기술은 전문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기업이 초보단계인 이 시장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자 와이파이 신생사들의 인수·합병(M&A)도 시작되고 있다. 세가지 802.11 기술 모두를 아우르는 칩세트를 개발중인 레조넥스트커뮤니케이션스는 지난주 1억3300만달러의 주식 교환조건으로 RF마이크로디바이시스에 인수됐다. 레조넥스트는 2000년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모두 6850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했다.

 또 다른 무선칩 업체 라디아타는 2년전 2억9500만달러에 시스코시스템스에 인수됐다. 라디아타는 802.11a 칩세트를 생산하는 2개 업체 중 한 곳으로 이 칩세트를 시스코 네트워킹 장비용으로만 만들고 있다.

 신생 무선칩 업체들이 현재 직면한 위협은 인텔과 같은 거대기업일지도 모른다. 샌타클래라에 본사를 둔 칩 제조업체 인텔은 내년에 ‘배니아스(코드명)’라는 무선 컴퓨팅용 칩세트가 포함된 모바일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시판할 계획이다. 인텔은 와이파이 칩세트를 자체 개발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외부 기술을 사들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인텔캐피털의 부사장 겸 이사인 마크 크리스텐슨은 “인텔은 배니아스에서 사용될 수 있는 기능들을 증대시킬 혁신적인 부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텔은 지난주 자사 5억달러 통신기금 중 1억5000만달러를 무선 컴퓨팅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신생사에 투자하기로 했었다.

 신생사들은 인텔이 배니아스로 자체 칩세트를 개발하게 되면 PC 판매회사, 네트워크 카드 제조업체 등이 인텔의 주기판과 메모리 칩세트, 심지어 요즘들어서는 그래픽 칩까지 구매하듯 모바일 인텔 칩세트를 무조건 구입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가트너데이터퀘스트의 애널리스트 번스는 “인텔은 PC 설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 자사 기술을 고객의 손에 넣는 확실한 길을 확보한 회사”라며 “일부 신생사는 인텔 기술이 실패하거나 아예 인텔에 인수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제이안기자 jayah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