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미국-실리콘밸리 경제지표 3년전으로 뒷걸음질

 인터넷 거품이 빠진 지금 실리콘밸리 경제는 대체 어디쯤 와 있을까.

 실리콘밸리 경제는 기본 수치만으로 보면 지난 99년 수준인 것 같다. 인터넷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실리콘밸리의 고용은 99년 수준으로 되돌아왔고 이곳의 대기업 매출도 3년 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른 수치들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좀더 복잡해진다. 실리콘밸리 경제가 광풍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지만 영광의 기간 동안 극적인 과잉팽창으로 완전회복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경제순환연구원(ECRI)의 상무이사 락시만 아추탄은 “거품붕괴가 매우 파괴적”이라면서 “호황일 때는 필요치 않은 곳에 투자하는 실수를 하다가 거품붕괴시에는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곤혹을 치르는 게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는 지난 90년대 말 호황의 대가를 아직 치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실리콘밸리 상장기업 10개 중 7개는 여전히 적자다. 지난 3주간 실리콘밸리 기업 3분기 실적발표에서 상장기업 중 3분의 2에 달하는 151개사가 적자를 본 반면 흑자를 올린 업체는 70개사에 불과했다.

 물론 이 같은 손실의 상당부분은 과거의 과잉팽창에 따른 일회성 비용이다. 하지만 이익을 올리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멀리 봐도 생존마저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매크로리틱스의 최고투자책임자 도널드 러스킨은 “실리콘밸리 기업이 나름대로의 ‘생존’게임에 직면해 있다”며 “1600여 하이테크 업체 중 70%가 영업상 적자를 보고 있고 이 중 상당수가 1년 이상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이테크 업체들은 더구나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도록 의무화될 경우 큰 어려움에 빠질 공산이 크다. 투자상담사인 존 몰딘은 “회계기준이 바뀌어 수익성이 개선되더라도 옵션처리가 비용으로 상계될 경우 하이테크 업체들은 성장에 한계를 느낄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무실 공간도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BT커머셜에 따르면 지난 3분기중 베이지역에서 임대를 위해 나온 사무실 공간은 4230만평방피트로 2000년의 4배에 달했다.

 커시맨&웨이크필드의 전무이사 마크 맥그라나한은 “이같은 과잉공간 해소에 5∼6년은 걸릴 것”이라면서 “업무용 부동산 시장이 말이 아닌 가운데 하이테크 업체들은 여전히 사무공간을 축소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관련업체간의 사활을 건 경쟁도 여전히 치열하다. 메릴린치의 기술전략가 스티븐 밀루노비치는 “하이테크 업체수가 30% 정도 줄어들 필요가 있다”면서 “통합이 마무리되려면 1∼2년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용도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실리콘밸리 시장조사업체인 이코노미닷컴(Economy.com)은 중심지역인 샌타클래라 카운티의 고용률이 바닥을 기고 있다면서 올 겨울 감원이 끝나고 내년에나 신규 채용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고용사정의 호전예측도 2년 전 고용이 절정에 달한 이후 직장을 잃은 9만2000명의 실직자에게는 너무 때늦은 낭보가 될지도 모른다.

 미 정부는 지난달 31일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기대에 못 미쳤다고 발표했다. 기업의 최고정보책임자(CIO)들이 기대만큼 하이테크 지출을 늘리고 있지 않다는 설문조사 결과와 실업률 통계도 곧 나온다. 게다가 다음주에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인하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웰스파고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손성원씨도 “경제의 활력이 급격히 감소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경기호전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하이테크 업계의 기반개선 작업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긍정적인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150대 기업 중 절반이 올 상반기중 흑자를 내 지난해에 비해 수익성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하이테크 투자 관련 GDP 수치도 하이테크 업계가 속도는 느리지만 코너를 돌기 시작했다는 징후로 분석된다.

 <코니박기자 cony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