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삼영 한국전산원장 ssy@nca.or.kr
2002년 11월 1일은 안방민원시대가 열린 날이다. 적어도 방송과 주요 신문에서 일제히 그렇게 보도했다. 이날부터 많은 관청이 우리들의 안방으로, 그리고 사무실로 옮겨 앉은 셈이다. 근대 이후 관청과 주거공간이 엄격히 분리되던 현상이 다시 무너지기 시작한 날이다. 그리고 주중의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열려 있던 관청은 이제부터 일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열리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런 형태의 행정이 시작되는 서막이 열린 셈이다. 이제부터 정부는 국민을 관청으로 오라가라하던 문턱 높던 시대를 스스로 마감하고 시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언제든지 열려 있는 그런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5월 24일에 전자정부 핵심 11대 과제를 정하고 이를 올해 말까지 완성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전자정부특별위원회의 정부위원과 민간위원은 무려 50회 이상을 모여 지혜를 짜고 이견을 조정했다. 각 해당업무 담당 실무자들은 근 2년간 주야를 잊은 채 이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정부 업무 모두는 아니지만 정부는 전자정부 구축을 위한 주요 기반, 즉 전자서명, 전자결재 및 문서유통, 범정부적 통합전산환경의 설계 등을 완성했고, 국민·기업과 직결된 통합전자조달, 4대 보험 통합서비스, 통합국세서비스와 교육행정서비스시스템을 구축해 관련 행정을 실시간으로 일괄 처리할 수 있도록 했으며 행정의 효율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통합재정시스템과 공무원통합인사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스템의 구축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를 구축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감회도 새롭고 큰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마도 세계 처음으로 정부업무나 서비스를 수직적·수평적으로 연계·통합해 관청이나 지역의 경계를 넘어 통합처리가 가능한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이나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제 단순한 시작에 불과하다. 서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직은 원하는 서비스가 없거나 있어도 부분적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고 쓰기도 불편하고 느리기도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할 일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기대는 낮게, 그리고 사용은 적극적으로 하자. 좀 모자라고 불편하더라도 초기에는 불가피하다고 보아야 한다. 절대로 처음부터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더 나아가 이를 열심히 사용해야 하고 공직자들로 하여금 이 시스템만으로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게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 상황에서 써 보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곧장 수정이나 개선을 요구해야 그야말로 완벽하게 된다. 불평이나 비판은 쉬우나 동참은 참여와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둘째, 전자정부 구축은 완성이 없다. 진화와 발전을 위한 과정만 있을 뿐이다. 이 몇 개 시스템의 구축으로 우리나라 정보화가 완성됐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큰 오해다. 민원혁신시스템(G4C)만 보더라도 4000여종의 민원 중 서비스 대상은 이제 겨우 400여종에 지나지 않고 서비스 내용도 부분적으로만 전자적으로 처리되는 정도다. 국민과 기업의 고통을 덜고 오히려 가치를 줄 수 있는 진정한 서비스 행정을 실현하기 위한 전자정부구축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중단없는 사업의 추진과 적정하고도 지속적인 자원의 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끝으로, 지난 2년간 전자정부사업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추진된 까닭이 무엇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이는 단순히 추진체계나 예산, 그리고 사람 등 어느 한 부분 때문이 아니다. 국정최고책임자의 확고한 의지로부터 모든 것이 제대로 엮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향후 성공적인 전자정부의 구축을 위한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전자정부 11대 과제의 완성은 안방민원시대라는 극의 제1막일 뿐이다. 이제부터 제2막을 성공적으로 열어야 한다. 극은 2막부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