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투성이의 공룡을 회생시킨 비법을 공개합니다.”
올 3월 IBM의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루 거스너의 자서전이 마침내 출간됐다. 지난 93년 4월 세계 최대 컴퓨터기업인 IBM의 수장에 오른 그는 당시 나락에 빠지고 있던 IBM을 다시 회생시킨 일급 구원수.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잭 웰치에 버금간다”라는 평가도 하고 있다. 실제 거스너가 IBM의 CEO로 부임할 당시 IBM은 주력 제품인 대형컴퓨터(메인프레임) 사업 부진으로 추락일로를 걷고 있었다. 조직체계도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져, 거스너가 9년전 만우절에 처음 IBM에 발을 내디뎠을 때는 예약시스템이 266가지나 됐으며 최고 정보기술책임자(CIO)도 무려 128명에 달했다. 그리고 고객 만족을 측정하는 조사 방법도 339개나 됐다. 이처럼 상처투성이에 뒤뚱거리던 공룡을 거스너는 취임 수년만에 대대적인 군살빼기와 주력분야를 IT서비스로 삼는 경영 통찰력을 바탕으로 IBM을 다시 세계적 스타 기업으로 성장시켜 놓았다.
거스너는 특히 이번 자서전 ‘누가 코끼리가 춤을 못춘다고 말하는가(Who says Elephants Can’t Dance)’에서 IBM을 회생시킨 비법과 함께 다른 IT업체들과의 비사(秘史)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IBM은 지난 96년 세계 3위이자 유럽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 독일 SAP를 거의 인수 막바지 단계까지 갔었다. 당시 IBM은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었는데, 이 분야 강자 누군가를 인수해 이를 단숨에 만회하고자 했었다. 결국 거스너는 SAP 인수를 백지화시키고 대신 그룹웨어 강자였던 로터스디벨러프먼트를 35억2000만달러에 사들였다.
그는 AT&T와 얽힌 흥미로운 일화도 소개했다. 98년 IBM은 자사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부문을 AT&T에 50억달러에 매각했는데 “35억달러만 받아도 잘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고 회고했다. 거스너는 IBM이 컴팩컴퓨터를 비롯해 MCI, 노텔, SGI, 노벨 같은 유력 IT업체들도 인수 후보자로 고려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IT업체들의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대부분 실패로 끝났으며 생각한 대로 시너지 효과가 창출되기 힘들다”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는데, 특히 한 투자은행가가 권고한 IBM의 컴팩컴퓨터 인수에 대해서 “매우 싫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거스너는 IBM이 10억달러를 주고 인수한 인포믹스의 경우 데이터베이스 시장에서 IBM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진 점을 거론하며 성공한 케이스라고 자찬했다.
그는 IBM 같은 대기업이 변화에 느리고 비효율적이라는 입장에 대해서도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다. “흔히들 소기업은 의사결정 등이 빠르고, 기업가 정신이 충만하며, 외부 대응에 신속하고, 조직 관리가 보다 효율적인 반면 대기업은 느리고, 관료적이며, 대응에 늦고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거스너는 “나는 경영자 시절 90개나 달하는 기업을 인수했지만 그 어느 것도 투자은행가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없다”며 투자은행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거스너 자서전은 하퍼 비즈니스가 출간했으며 책의 가격은 26.95달러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