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 시큐어소프트 사장
일본에서 어떤 경제지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기자는 상당히 젊어 보였는데도 아주 자연스런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다. 갑작스런 한국말에 내가 당황하자 “저는 한국의 열렬한 팬입니다”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한국의 어떤 점에 그렇게 반했느냐고 묻자 ‘열정’과 ‘젊음’이 느껴지는 한국 문화라고 답했다.
이 만남은 월드컵 이전이었지만 월드컵 이후에는 일본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7월 초 스무 장 정도의 붉은 악마 티셔츠를 일본에 가져간 적이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일본 대기업 임원이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중국이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런 배경은 글로벌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화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역사와 문화, 차이점과 문제점에 대해 논리적이고 합당한 정체성을 갖춰야 한다. 아울러 그들의 문화적 정서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중국의 부상으로 동북아시아가 미국과 유럽에 이은 또 다른 축으로서 떠오르고 있다. 이 문제는 이미 예측의 단계를 벗어나 대부분이 대세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단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이며, 어떤 형태로 그림이 그려지느냐에 궁금증이 더해가고 있다. 서울에서 2∼3시간 이내의 동북아를 하나의 원으로 만들게 되며 홍콩·싱가포르·기타 동남아 국가를 어우르는 또 다른 원이 형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적인 전환점에 서 있는 우리의 현실적인 인식이 절실하다. 우리가 어떤 결정과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바뀌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은 몇 가지 긍정적인 특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열정적인 기질, 고급 IT 인프라와 사용 문화, 기업가 정신 등을 비롯해 전통과 현대적 창조 기술이 접목된 우리의 각종 문화는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시대에 접근하는 자세가 다소 막연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와 같은 그룹을 형성하게 될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 실질적이고 정량적인 분석이 부족하다. 때로는 역사적 정체성과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에서의 사업은 말은 무성하지만 성공사례를 찾기 힘들다. 12억이라는 대규모 시장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성공적으로 파고들어간 예는 흔치 않다. 공장을 이전해 비용절감 효과를 봤지만 결국 호랑이를 키운 결과가 된 사례도 눈에 띈다. 중국이 집요하게 찾는 제조 노하우만 넘기고 기업의 변신에 실패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이 없다.
한편 일본의 불황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는 분위기도 다소 막연하다. 과연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물론 관료화와 금융 관행이 일본의 구조적인 문제를 야기했지만 세계적인 제조기술과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중소기업에서 한 해에 2개의 노벨상을 받아낼 정도로 한 분야를 파고들어가고 있는 것은 우리의 문화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신용에 기반을 둔 유통구조는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들의 문제는 우리에게도 배어 있다. 투명한 유통 구조보다 폐쇄적인 인맥이 가치 창출에 중대한 요소가 되는 것은 중국의 문화와 맥을 같이 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에서 배운 제도나 시스템이 우리의 주축이 돼 있기에 그들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기도 하다. 교육 제도, 관료적 마인드, 낙후된 정치환경들은 우리가 창의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시각을 바꿔 보면 우리는 중국과 일본을 리드할 포인트를 많이 발견하게 된다. 특히 벤처 기업은 한국인 고유의 기업가 정신과 투명한 경영환경을 지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왔다. IT시장은 넓지만 미국 제품에 의존하는 일본이나 아직 단순제조업에 머물러 IT의 가용성에 대해 인식과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은 중국과는 차별화된다.
여기에 우리의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문화적 자산이 더해진다면 한국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우리의 가치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중심의 사고보다 글로벌 가치를 추구하는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아울러 과거의 뼈아픈 경험과 성공사례를 정량적으로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혜가 나오고, 우리의 비전을 성취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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