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GPS의 두 얼굴

 샌프란시스코에는 유난히 일방통행로가 많다. 눈 앞으로 다가온 건물이라도 주차장에 진입하기까지 보통 3, 4번의 좌우회전이 필요하기 때문에 초행길의 운전자가 자동차를 몰고 도로로 나서기에 부담스러운 곳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인공위성을 통해 오차 범위 20m 안에서 길을 안내해주는 위성위치측정시스템(GPS) 덕분이다.

 지난 8일 미국의 GPS서비스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의 렌털카센터에서 자동차를 빌려 나오면서 입력한 M호텔을 끝까지 안내해냈다. 공항과 중심가를 연결하는 101번 고속도로에서 잘못된 길로 빠져나왔을 때, 도심에서 복잡한 일방통행로를 헤맬 때는 ‘길을 찾고 있다(Calculating route)’며 인공지능형 정보기술(IT) 솔루션임을 과시했다. 하루 8달러의 요금으로 미국 서부지역 구석구석을 알고 있는 가이드를 항상 곁에 두는 셈이다.

 미국은 IT강국이자 우주에 가장 넓은 영토(인공위성)를 구축한 나라로서 전세계 GPS 서비스의 오차 범위를 조율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해온 GPS를 보다 편리한 생활환경을 바라는 소비자, 수익창출을 추구하는 이동통신사업자의 요구에 부합해 위치추적서비스를 조금씩 허용해온 것이다.

 그런데 기자가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길을 몰라 헤매는 것은 그야말로 사생활이 아닐까. 미국 정부가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관심을 둘 일이 없겠지만 ‘필요하다면 추적하고 모종의 목적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윌 스미스와 진 해크먼이 주연한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는 미국의 발달한 GPS 기술이 어떻게 민간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특정집단의 이기적인 목적에 활용되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영화는 ‘있을 법한 상상’이기에 기자의 지나친(?) 걱정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GPS 기술을 이용한 위치추적서비스가 대중화되면서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국회에서는 이동전화서비스를 통한 ‘감청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IT의 왕성한 발전에는 언제나 ‘공공의 이해와 합의, 투명성’이라는 제동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샌프란시스코=엔터프라이즈부·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