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IT불황 탈출구는 없나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 juchoi2@markany.com  

 비즈니스업계의 대표지인 포브스는 최근 IT업계의 불황을 두 차례나 연속으로 분석·보도한 바 있다. IT업계의 중요 고객인 항공사·호텔·병원·자동차업체·제조업체·금융회사들이 SW와 HW 부문의 경비를 대폭 줄이면서 IT업체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불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94년 S&P의 55개 기업 IT투자액을 100으로 놓고 볼 때 HW와 SW를 합친 전체 IT투자액은 95년 138, 96년 191, 97년 238, 98년 423, 99년 748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IT업계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2000년 484, 2001년 316으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2002년에는 지수 155를 예상하고 있다. 이는 거품이 절정에 도달했던 99년의 2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 수치다.

 이러한 기업투자의 격감은 PC판매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투자분석회사인 메릴린치는 올해 초 PC판매가 작년 대비 2.5%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지난 10월 3% 감소로 예측치를 수정했다. 이는 PC 평균가격이 6% 정도 하락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체적으로 매출규모는 9%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시스코, 인텔, 오라클의 주가가 올해 들어 48%, 54%, 39%씩 각각 떨어진 것도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의 한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IT투자액은 2001년 전년 대비 11%, 2002년에는 1%, 그리고 내년에는 3%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이보다 휠씬 냉랭한 것으로 포브스는 보도하고 있다. 실제 IT업계의 84%를 차지하는 기업고객(corporate customers)은 이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예산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IT업계 스스로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 짧게 만들고 같은 가격에 좀 더 성능이 좋고 빠른 제품을 쏟아내면서 초래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HW성능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1년 6개월 만에 2배씩 향상되지만 종전의 가격이 그대로 적용되고, 세계적인 벤처 붐과 함께 SW 공급자는 시장에서 어디에나 넘쳐나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 기업고객들은 오히려 제품의 구매사이클을 천천히 연장함으로써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SW시장은 세계 각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엄청난 공급자들로 시장이 넘쳐나고, 매년 적자만 내는 기업들이 2000년 벤처거품 시절 거둬들인 투자금을 가지고 다른 기업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두더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실리콘밸리와 테헤란로의 벤처거품이 한창일 때 아무도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의 예측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현재의 정보혁명은 문자발명이나 금속활자의 발명과 같은 또 다른 정보혁명에 불과하다. 금속활자가 처음 발명됐을 때 처음에는 활자 제조업자들이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결국 모두 망해버리고 결국은 출판사만이 살아남게 됐다. 향후 IT업체보다는 콘텐츠를 가진 업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그의 주장은 투자금을 손에 들고 IT업체들을 찾아다니던 창투사와 투자자들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던 것이다. 이제 그의 예언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현재의 불황이 피터 드러커가 예측한 제4 정보혁명이 방향을 바꾸어 기술혁명에서 콘텐츠혁명으로 돌아섰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미 많은 기업고객들이 이제 IT투자를 ‘생존에 필수적인 최고 우선순위의 투자’로 여기기보다는 ‘기업운영에 필요하지만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투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증후는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 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은 기업고객 시장이 살아있다. 그러나 IT제품을 사줘야 할 제조업체·서비스업체·금융기관·공공기관이 향후 가격경쟁과 경비절감의 압력 속에서 고군분투하게 될 때, 그래서 사용PC의 내구연한을 늘려나가고 SW 구매를 중단하게 될 때 국내의 SI업체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IT업계의 불황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타개할 아이디어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