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석 고려대 교수 ahnms@mail.korea.ac.kr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전자공간에서 생활하는 우리를 규제하고 있는 제도 중에는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서 만들어낸 낡은 제도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구간을 정해 대상을 차등적으로 규제하는 제도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작년 장마 때 용인·수지 지역의 피해에 놀랐고 그 원인이 난개발이었다는 데 분노했으며 그후 수많은 정책적 해결방안이 제시된 것으로 알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도 난개발은 계속되고 있고, 특히 강남에는 66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학교부지 등 공공용지를 확보하지 못해 과밀학급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이 지역이 ‘난개발’ 지역이 돼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현행법 체제에서는 300세대 이상의 집단주거시설이 들어설 경우에만 공공용지 확보를 위한 부담금을 지우도록 규정돼 있어 공공용지를 확보하지 못했고, 더욱이 주상복합아파트는 부담금을 부과하는 법률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학교용지 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설명이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주상복합아파트를 부담금 부과대상에 추가하는 법률이 통과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의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한 것 같다. 이들 난개발의 뒤에는 ‘300세대 이상’ 이라는 마법의 숫자가 원흉으로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300세대를 한계로 그 이상에 대해 부담금을 물리게 한 데는 ‘행정의 편의성’ 등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테지만 그 제도가 갖는 부작용이 너무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일정 수준을 정해놓고 그 이상이 되면 세금을 높게 책정하거나 처벌수위를 높이는 제도가 우리 주위에는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가구당 전력사용량이 월 400kw 이상이면 전기요금을 갑자기 많이 부과하는 할증제가 그것이고, 종합소득세에 의무적으로 추가하는 금융이자소득도 연간 4000만원 이상부터 적용토록 하고 있다. 고급주택을 45평 이상, 시가 6억원 이상으로 규정하는 것도 또 다른 예라고 할 수 있다.
물이 얼음이 되는 순간, 물이 수증기가 되는 순간 등을 물리학에서는 임계점이라 부른다. 정부가 의식적으로 정한 위의 예, 즉 300세대, 400kw는 물리학의 임계점과 같은 기능을 사회시스템에서 수행한다. 그리고 물리현상의 경우 임계점 부근에서는 항상 카오스, 즉 혼란이 발생한다. 사회현상에서도 임계 수준 근방에서는 난개발과 같은 혼란이 발견된다. 경제 주체들이 이 수준을 중심으로 자신의 행위를 조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난개발의 원인을 임계점 부근에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제 주체의 ‘비윤리적인’ 행위에서 찾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원인은 임계점을 설정한 제도 자체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난개발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임계점을 제거해야 한다. ‘계산과 행정의 편의’ 때문에 임계점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계산과 행정의 편의를 갖추면서도 임계점이 없는 연속함수 형태의 새로운 제도를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 300세대 이상에만 공공용지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집단주거세대에 부담금을 부과하면서 공공용지를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공식을 고안해낼 수 있을 것이다. 전력요금 산정에서도 400kw라는 임계점을 설정하고 이 수준에서 갑자기 요금이 뛰도록 할 것이 아니고 2차 함수나 지수함수를 이용해-동일한 요금 수입을 보장하면서-임계점의 존재를 없앤 새로운 함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임계점을 상정한 공식은 컴퓨터가 없던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컴퓨터가 일상생활에서 광범하게 이용되고 인터넷을 통해 정부와 국민, 그리고 기업이 만나는 전자정부 아래서는 새로운 사회에 알맞은 새로운 제도를 고안해야 한다.
정보사회의 새로운 제도에서는 인위적인 임계점을 퇴출시켜야 한다. 임계점 부근에서는 항상 혼란스러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변하지 않는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