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는 매년 이맘때만 되면 정보기술(IT) 향연을 펼쳐놓고 전세계 야심가들을 불러 모은다.
빌 게이츠와 래리 앨리슨·스콧 맥닐리·칼리 피오리나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IT업계의 거두들은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 중국과 일본 틈바구니의 조그만 나라 ‘코리아’의 벤처 사장들도 꿈을 안고 몰려든다.
그런 라스베이거스가 예전같지 않다. 올해 추계 컴덱스에 참여한 전세계 업체 수가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데다 일부 기업에서는 아예 컴덱스를 보이코트하려는 움직임까지 감지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참여도 절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참여한 업체마저 컴덱스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을 정도다. IBM·시스코·소니·LG 등 세계적인 기업도 아예 ‘CES’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이 같은 현상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일국패권주의에 이어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경제패권, 더 나아가 기술패권주의에 대한 결과물이란 설명이다.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경제·기술 신흥국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데 대한 반발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IT경기의 한파도 한몫하고 있다. 매년 전세계 눈과 귀를 모으던 ‘테마 신기술’의 부재와 전문전시회의 괄목할 만한 성장 탓도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 패권화한 상술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2∼3년 전부터 전세계 IT기업은 컴덱스쇼를 주관하는 키스리미디어그룹(http://www.key3media.com)란 기업의 횡포에 기가 질려 있다는 후문이다. 현지 전시관 부스와 숙박시설의 블록화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키스리미디어의 횡포에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쇼의 특성상 기업과 일반인의 눈길을 끌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회사의 횡포가 지나치다 보니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세빗이나 CES로 눈을 돌리게 되고 또다른 전시회를 찾아나서는 상황을 맞고 있다. 아마도 컴덱스가 전세계 IT기업들의 진정한 비즈니스의 향연이 되지 못하고 패권화한 상술에 휘둘리게 되면서 라스베이거스는 자칫 ‘도박과 쇼걸의 도시’라는 화려한 이름에만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라스베이거스=IT산업부·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