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NHN(주) 공동대표 haejin@naver.com
도둑이 들어서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훔쳐갔다고 한다면 어떤 물건이 가장 아쉬울까. 나중에 돈으로 다시 살 수 없는 것들이 가장 소중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을 모아놓은 앨범, 주고받았던 편지들, 지금은 절판된 음반, 중요한 곳에 줄을 쳐놓고 메모한 책들, 추억이 있는 기념품 등. 결국 개인의 히스토리와 연관된 자산들이 가장 소중하지 않을까.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이런 소중한 자산들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예전에는 개인들이 서로 편지를 얼마 주고받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나마 보낸 것은 복사해놓지 않으면 갖고 있을 수도 없고 받은 것들도 추리고 추려서 꼭 필요한 것만 보관했지만 지금 전자우편시대에는 어렸을 적 처음 써본 전자우편부터 죽을 때까지 주고받은 모든 메일을 저장해서 갖고 있을 수 있다. 평생을 모아봐야 CD 한장 분량 정도일 것이다.
문득 학창시절에 즐겨듣던 또는 추억이 있는 음악이 생각날 때 그 음악을 바로 들어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나오는 MP3 플레이어들은 그 자체에 기가메모리 저장공간을 담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맘에 드는 음악을 평생 담고 다니면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의 역사의 기록은 왕이나 귀족 같은 힘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록되고 전해져 내려왔다. 일반 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느끼고 살아왔는지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먼 역사의 기록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정도만 생각하더라도 그분에 대한 정보는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디지털시대와 함께 개인의 소중한 히스토리를 글과 사진으로 생생하고 저렴하고 손쉽게 기록·저장·검색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의 어떤 왕의 기록보다도 더 철저하고 더 정확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란 늘 뿌연 안개 속에서 역사학자들의 도움으로 어렴풋이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후손들은 역사란 아주 쉽게 검색되고 사실 그대로 생생히 전해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