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게임업계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화제꺼리 중 하나가 ‘닌텐도와 MS의 딜’이다. 닌텐도가 자신들의 핵심 파트너인 영국 게임소프트개발업체인 레어를 MS에 매각한 것이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양사가 실탄과도 같은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사고 판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때 가정용 게임기시장을 호령했던 닌텐도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에 밀려 2위로 추락하고 최근에는 MS의 ‘X박스’에 고전하고 있다.
이미 닌텐도의 ‘게임큐브’는 전세계 시장점유율에서 3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닌텐도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분석 뒤에는 풍부한 게임소프트웨어가 있다. 반면 후발업체인 MS사는 생각만큼 게임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닌텐도가 레어를 판 이유로 두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MS의 엄청난 현금 공세다. 닌텐도는 이번 매각을 통해 230억엔을 현금으로 챙겼으며 이중 장부가인 40억엔을 제한 190억엔이 순수 매각이익인 셈이다. 사실 닌텐도는 올 상반기에 달러 자산 관리의 실패로 290억엔 환차손이 예상돼 실적악화가 우려됐었다.
또 하나는 닌텐도 내에서 레어에 대한 평가가 낮아진 점이다. 85년 설립된 레어는 외부 공개되지 않은 닌텐도의 소프트웨어프로그램 사양을 독자적으로 분석해 게임을 개발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90년대초에는 닌텐도와 공동으로 가정용게임기 ‘슈퍼화미콘’용 게임 ‘슈퍼 동키콩(Super Donkey Kong)’을 개발해 유명세를 탔다. 닌텐도는 핵심 협력사로 부상한 레어를 99년 49%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휴대형 게임기인 ‘게임보이어드밴스’와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게임큐브’가 나온 2000년부터 닌텐도측에서 레어에 대해 게임 개발기간이 길다,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닌텐도의 2002년 3월 회계연도 결산을 보면 소프트웨어 매출에서 레어의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5%에 불과하다. MS는 레어가 히트게임을 제작해 ‘X박스’ 보급에 선봉장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레어는 향후 2년간 5개 타이틀을 X박스용으로 개발할 방침이다. 여기에는 과거 닌텐도용으로 발표한 인기 게임의 속편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선은 자연스레 내년봄 레어가 내놓을 첫 X박스용 타이틀로 쏠리고 있다. ‘적과의 딜’로 누구 더 재미를 볼지는 오직 게이머들만 답해줄 것이다.
<도쿄 = 성호철 특파원 hcs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