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선 국제부 차장
“전시회를 찾으면 신기술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전시회는 또 제품공급자와 유통회사, 소비자가 한 곳에서 만나 토론한 후 뒤풀이도 할 수 있는 축제의 자리다. 인터넷시대에는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상담을 벌이는 전시회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컴덱스 전시회를 개최하는 회사로 더 유명한 키3미디어그룹 바버라 파워스 부사장(46)이 2000년 여름 전시회 홍보를 위해 방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당시만 해도 컴덱스는 매년 25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따라서 이 회사의 몰락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컴덱스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과 출품업체가 예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키3미디어도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22일(현지시각) 컴덱스 전시회가 끝나는 대로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무엇이 미국 최고 정보기술(IT) 전시회업체를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을까.
우선 최근 컴덱스가 몰락한 가장 큰 이유로 IT불황을 꼽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2000년부터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IT불황에서 자유로운 업체를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키3미디어그룹 프레드릭 로젠 회장도 “IT업체들이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IT전시회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최근 불황에도 불구하고 올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와 이번주 볼티모어에서 열린 슈퍼컴전시회(Supercomm) 등은 전세계에서 찾아오는 관람객이 별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로젠 회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반감된다.
또 실제로 최근 상당수 전문가가 IT전시회의 대명사로 통하던 컴덱스가 몰락의 길로 들어선 것도 외부 환경보다 내부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하이프프리컨설팅의 존 올식 사장은 최근 키3미디어그룹이 자초한 실책을 3가지로 명쾌하게 분석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올식 사장은 우선 최근 IT제품이 일반 소비재와 비슷해지면서 전시회 참가업체들이 속속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회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 키3미디어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을 꼽았다. 이에 따라 컴덱스의 최대 후원업체던 IBM과 소니 등이 최근 컴덱스 대신 CES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또 키3미디어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카드(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자동차(포드) 등의 업체를 끌어들여 컴덱스의 저변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는 기존 IT업체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아직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이에 세 번째로는 최근 IT전시회가 인터넷과 통신장비·네트워크 등으로 전문화하고 있는 상황도 여전히 ‘IT종합박람회’를 고집하고 있는 컴덱스에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전세계 IT 신기술 경연장으로 명성을 떨친 컴덱스가 최근 한순간에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떠올린 교훈이 있다.
‘적은 내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