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석 외국기업협회장 y-sohn@ti.com
요즈음 경기전망에 대한 신문기사나 뉴스를 보면 낙관적인 내용보다는 비관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미-이라크 전쟁 위험 등으로 인해 국제정세 또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IT분야에 종사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이번처럼 불황의 골이 깊고 오래 지속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반도체의 실리콘 사이클이나 LCD의 크리스탈 사이클도 여러번 경험해 봤지만 대부분 1년 내지 2년 정도의 불황기간을 거친 뒤 다시 호황기로 접어들곤 했다.
이번 불황은 9·11테러 사태와 이라크 전쟁 위험 등과 같은 악재가 겹쳐서인지 2000년 초부터 시작된 불황이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기회복을 확신하기 힘든 형편이다. 만약 내년까지 이 불황이 이어진다면 3년 동안이나 불황이 지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불황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또 내년의 경기전망까지 불투명하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의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있다는 데 있다.
실제 미국의 경우 소비심리가 아직까지 건실함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이유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금을 쌓아 놓고 있으면서 언제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눈치만 살피고 있기는 우리 기업도 마찬가지다.
호황기에서 불황기로 접어들 때에는 지난 2000년 초에 그랬듯이 모든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긴축재정을 통해 착실하게 내실을 다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불황이 2년을 넘기고 3년으로 들어가는 시점이다. 이러한 시점까지 기업이 움츠리고만 있어서는 장래를 기약하기 힘들다.
각종 통계나 경기지표는 과거나 현재의 참고자료일 뿐이지 미래 경기를 판단하는 데 절대적으로 신봉할 수 있는 지침자료가 될 수는 없다. 연말이 다가옴에 따라 각종 경제연구소나 세계적인 투자기관들이 내년도 경제전망을 앞다퉈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전망 또한 무조건 믿을 만한 것은 못된다.
결국 호황에 대비해 과감한 투자를 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움츠리고만 있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은 기업 자신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IT업계의 상황을 살펴보자. 이미 이동통신 전화기에 들어가는 컬러 LCD, 모뎀 칩세트, 사운드IC, 플래시메모리 등 일부 주요 품목들이 부족현상을 보이고 있고 PC용 HDD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혹자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난 2년 동안 대부분의 IT업체들은 장기불황에 대비해 초긴축 경영을 해왔기 때문에 조금만 수요가 회복돼도 공급부족 현상이 초래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많은 IT 전문가들도 IT산업이 지금까지의 부진에서 벗어나 2003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호조세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세계 IT경기의 회복에 따라 내년에는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볼 때 IT산업은 불황의 끝을 넘어서 이미 회복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가올 미래의 호황기에 대비해 차세대 기술과 경쟁력 있는 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
기업은 또한 경기를 선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호황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현금만 비축하려 한다면 경기회복의 길은 요원할 뿐이다. 이는 결국 기업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해 경기회복에 앞장서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