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욱 ETRI 컴퓨터소프트웨어 연구소장 rim@etri.re.kr
대한민국이 IT강국이라는데 이견을 가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언론의 힘이든, 인터넷의 힘이든, 혹은 휴대전화의 힘이든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IT산업은 2차 산업과 3차 산업에 걸쳐 있으며, 해석의 차이는 있으나 정보의 생산(수집·가공), 유통(저장·전달), 소비(사용·응용)의 과정을 거친다. IT기술의 핵심에는 컴퓨터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이 범용이든 특수목적에 활용되는 것이든 컴퓨터는 IT산업의 핵심 축을 지탱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전동기가 거의 모든 기계에 활용되는 것 이상이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한다. 컴퓨터 기술의 최소 극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이고, 최대 극은 슈퍼컴퓨터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가 이들 기술에 포함돼 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작지만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컴퓨터의 주요 기술을 함축하고 있고, 슈퍼컴퓨터는 마이크로프로세서들을 집적하여 하나로 통합한 대규모의 고성능 시스템이다. 이들 두 가지 기술을 확보해야만 중간의 모든 기술을 쉽게 보유할 수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추론이다.
IT기술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고들 한다. 이 또한 이견을 가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IT기술 분야에서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의 성장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전 세계에 있는 슈퍼컴퓨터 중 24번째로 빠른 1테라플롭스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자체기술로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중국은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선진국을 제치고 이들 국가보다 빠른 슈퍼컴퓨터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 전 세계에 가동 중인 슈퍼컴퓨터를 보유한 국가 1∼23위는 미국과 일본 두 나라가 차지하고 있다.
또 중국은 RISC 기반의 서버용 마이크로프로세서(CPU)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갓슨-1A(Godson-1A)’라고 명명된 이 프로세서는 266 MHz급이며 서버에 사용될 수 있다고 중국과학원은 밝혔다. 현재 CPU 시장은 PC 및 서버 분야에서 미국업체들의 지배력이 확고한 상태다. 중국이 CPU 개발 국가군에 진입하게 되면 세계 시장에서의 입지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최소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 중국보다 IT기술에서 우위에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 5년, 10년, 20년 후에도 그렇게 될 것인가.
최근 거우중원 산둥성 정보통신부 장관은 “중국은 IT시장규모가 날로 성장을 거듭해 세계 빅3 국가에 진입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중국은 슈퍼컴퓨터 개발을 계속 추진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 역시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이에 관한 한 우리는 범국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이 미약하다. 미래를 위한 노력과 투자 없이 IT강국의 영광을 지속적으로 누리는 것이 불가함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2㎓ 이상의 CPU가 출시되고 있지만 중국은 약 10의1 성능의 CPU를 개발하고서도 축제 분위기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내장형 시스템에 사용되는 중소형 CPU 개발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대안일 것이다. 당장 세계 최고가 될 수는 없지만 슈퍼컴퓨터 역시 장기적 안목에서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80년대 중반부터 지속되어 온 국내의 컴퓨터 시스템 개발경험과 인력을 결집하여 추진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물론 내일에도 IT강국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함을 느낀다. 이는 후배나 후손의 몫이 아닌,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임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