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창 IT담당부국장 wcyoonetnews.co.kr
현정부 들어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게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기업 천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관료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의 기를 살려주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현정권 말기인 요즘 수많은 기업이 소위 ‘기업 이민’을 꿈꾸거나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엊그제 SK는 중국에 제2본사를 만들겠다며 내년부터 본격적인 투자 의사를 밝혔다. 삼성·LG는 일부 대기업의 경우 생산 기반을 아예 중국으로 옮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겉으로 ‘생산거점의 글로벌화’를 엑소더스의 변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다.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유일한 탈출구도 중국·베트남 등으로의 이전이다. 일할 사람을 찾아 공장을 옮기는 것이다. 중소기업 10개 중 6∼7개 정도가 생산거점을 중국 등 해외로 옮겼거나 3∼5년 사이에 이전을 계획 중이라는 조사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물론 중소기업들의 엑소더스는 국내에서 임금·지가·금융비용 등 생산요소의 고비용 구조가 여전한 데다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온갖 규제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진화하는 생명체와도 같다. 경영여건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때 그에 적응하는 기업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기업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변화를 부단히 체크하면서 닥쳐올 변화 속에서 살아남을 생존전략을 끊임없이 세우고 실천한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비즈니스 기회가 확대된 데다 투자환경마저 우리보다 유리해 말 그대로 ‘세계 제조업의 블랙홀’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기업이 임금과 기술 수준, 시장규모에서 비교우위에 있는 최적의 생산지로 떠오른 중국으로 가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해외 이전 붐이 그간 알려진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선진국과 달리 생산기지뿐만 아니라 연구개발(R&D) 등 핵심부문의 해외 이전도 느는 추세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휴대폰·자동차 외에는 아직 확실한 캐시카우(cash cow)산업이 없는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급속한 외국 이전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자칫 국내 산업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당장 산업공동화로 진입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구체적 지표로 나타나고 있지도 않지만 노동 및 물류비용, 지가상승 등을 고려하면 5년 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다. 산업공동화가 진행되면 당장 국내 설비투자 위축과 함께 일자리가 주는 등 지역경제의 침체를 피하기 어렵다. 장기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이제 남의 일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기업의 해외 이전을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국제 분업 심화와 국내 주력산업의 해외 진출이 확대됨에 따라 그 공백을 메워줄 대응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새로 들어설 정부는 말로만이 아니라 기업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제공해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해외 이전 속도를 조절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함께 80년대 들어 급격한 비용 상승으로 제조업 생산시설의 약 90%가 중국으로 이전, 산업공동화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 홍콩이 중계무역기능을 발전시키고 금융·서비스산업 육성으로 이후 20년간 번영을 이룬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관건을 쥐고 있는 기업도 국내 산업이 고부가가치 분야로전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산업공동화 우려는 전환기의 한국경제에 대한 마지막 ‘경고’로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첫 과제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