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 키움닷컴증권 사장
지구에서 잘사는 나라들은 대개 온대지방에 몰려 있다. 열대지방은 1년 내내 덥고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바나나를 비롯한 과일들이 많고 고기와 어류들이 풍부하여 굶어 죽을 걱정이 없다. 밤에도 기온이 높아 옷을 입지 않고 밖에서 자도 얼어죽을 염려가 없다. 먹고 사는 걱정이 없으니 자연히 게을러지게 된다. 즉 생존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일년 내내 얼음과 눈속에서 지내는 한대지방 역시 열악한 기후환경 덕(?)에 외부침략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다만 추위를 막아줄 집과 털옷, 그리고 먹을 것만 해결되면 더 이상의 걱정이 없다.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되면 그 이상의 변화를 꾀하기에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하기 때문에 시도하기 어렵다.
반면 온대지방은 뚜렷한 사계절의 영향으로 항상 변화에 대비한다. 봄과 여름에는 가을철 수확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을 맞으면 추운 겨울에 대비한다. 그렇다고 겨울에 추위를 핑계로 움츠려 있거나 준비해놓은 식량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다음해를 준비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온대지방에 있는 나라들이 잘 사는 이유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변화하는 계절에 잘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미래를 준비하면서 변화에 대한 적응력 또한 자연스럽게 강화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시중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과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서로 팽팽하다. 초저금리를 유지하며 기업과 가계부담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도 있고 부동산 등 투기를 억제하고 적정한 금융소득의 보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금리인상은 용인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의 금리 추이를 살펴보면 60년대부터 70년대 후반까지 1년 만기 정기예금금리는 12%에서 26.4% 사이에서 움직이다 8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는 8%에서 13% 사이에서 움직이며 장기 하강 추세를 보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8%에서 5% 사이에서 움직이며 더욱 낮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채권을 비롯한 시중금리는 80년 초 33%, 91년 20%, 98년 30% 등 한때 이상급등을 보이기도 했다.
금리가 올라가면 가계나 기업의 입장에서 차입금에 대한 이자부담이 많아지게 되고 이에 따라 차입금을 축소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나 가계는 투자를 줄이게 된다. 반대로 금리가 떨어져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게 되면 차입에 따른 자금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단군 이래 최저금리가 지속되고 있어 은행에서 돈을 빌려 부동산을 매입한 후 임대를 해도 남는 상황이 되었다. 은행에서는 돈이 남아 대출처를 찾는 일이 예금을 유치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 은행 문턱이 높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전국민이 초저금리 상황을 마음껏 향유(?)하는 느낌마저 든다.
문제는 금리가 현 수준으로 계속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어느날 어떤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금리가 두자릿수로 올라간다면 현 금리수준을 믿고 부채를 늘렸던 가계나 기업은 차입금 이자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개인파산과 기업의 부도가 늘어나면 이는 금융기관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되고 금융기관이 감내할 능력이 없게 되면 이 또한 국민부담으로 이어 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나 가계가 변화에 대응하고 준비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금리도 적당한 시기마다 어느 정도의 파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낮은 금리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과도한 차입이 발생하기 쉽고 높은 금리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국제사회에서 기업경쟁력이 약해진다. 가계나 기업으로 하여금 적절한 대처능력과 위기관리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금리정책에도 사계절을 접목해 내일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