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업체가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면 배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문제는 공공기관이 앞장서 출혈경쟁을 조장한다는 겁니다. 겉으로는 정보보호산업 육성을 외쳐도 최저가 입찰이 남아 있는 한 국내 정보보호산업의 미래는 없습니다.”
최근 모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공개키기반(PKI)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한 한 보안솔루션업체 사장의 하소연이다.
장밋빛 미래가 예상되던 정보보호산업이 출혈경쟁으로 멍들고 있다. 이번 PKI프로젝트만 해도 1억원 정도의 규모가 예상됐지만 최저가 입찰 결과 1000만원을 밑도는 가격에 계약을 체결됐다. 솔루션 비용은 고사하고 프로젝트에 투입한 인건비도 건지지 못한 셈이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백신업체는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라이선스 가격을 1명당 1만5000원 선에서 유지하고 있지만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2000∼3000원에 공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경찰청이 연말까지 일선 파출소에 DVR를 도입하기로 한 계획도 최저가 입찰에 의한 가격문제가 불거지며 답보상태다.
‘우리가 쓰면 다른 곳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담당공무원의 기괴한 논리와 강요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가격파괴(?)를 감수하는 상황이다.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출혈경쟁 및 최저가 입찰사례 조사’를 진행하는 정보보호산업협회의 관계자는 “최저가 입찰제도가 우리 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나 예상가격의 80% 이상 입찰이나 프로젝트 주사업자인 시스템통합업체와의 분리 입찰 등 단계적인 해결책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틈만 나면 정보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산업 육성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보보호 솔루션조차 일반기업보다 막무가내로 값을 깎는다면 이는 공염불일 뿐이다.
“‘정보보호산업 종합육성책’ 같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도 기술 평가를 거치고 이미 확보한 테두리 안의 예산집행만 이뤄져도 바랄 게 없습니다”라는 한 정보보호업체 사장의 말에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