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절차의 공정성

 ◆장수덕(미국변호사, 국제상공회의소 IT-Telecoms 위원회 위원) 

 정보기술(IT), 특히 통신부문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술의 비정상적 이전이나 해외유출, 지재권 침해 등에 대한 시비가 일어나고 기업활동이 적잖게 위축되는 분위기다. 어느 회사는 대기업 출신 직원이 가져온 기술파일 때문에 최고경영층까지 구속기소되기도 하고 해외진출을 위해 현지업체와 제휴하려는 모 회사는 기술유출의 우려가 있다고 미리 걱정하기도 한다. 한국은 사회적·윤리적인 센서십이 비교적 강해 때로는 불법적·비윤리적 활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지나치게 증폭되고 정상적인 법률절차를 거쳐 가려야 할 잘잘못이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번져 당사자들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 진정한 정보통신 강국이 되고 또 이를 유지하려면 법치주의적 사고방식을 먼저 길러야 할 것이다. 자유·평등·공정·개방 정신이 법치주의의 기본 이념이며 특히 우리가 많이 더 배워야 할 것은 과정의 공정성이다. 전술한 구속기소건 역시 물론 기소를 결정할 만한 기초수사와 증거포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기술을 의도적으로 전용했는지, 경영층이 인지 또는 계획했는지, 실제로 어느 정도 적용했는지, 해외의 누군가에게 기술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그 기술의 유출로 손실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그것이 핵심기술인지, 지적재산으로 권리확보가 돼 있는지 등 쉽게 확인될 수 없는 많은 사항에 대해 사실심리와 법의 적용이 있어야 당사자들의 죄와 벌이 가려질 것이다.

 핵심기술이라면 특허등록이 돼 있을 것이므로 침해에 대해 구제를 받는 특허법상의 절차가 있다. 그러나 영업비밀(Trade Secret/Know-how)에 대한 권리보호 문제는 불확실성이 많은 것이며 따라서 사법적 심리과정에서도 상반된 이해관계, 영업비밀의 범위(보호받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별), 손해규모의 검증을 거치게 되고 일견해 명확한 판정을 할 수 없는 문제다.

 이러한 불확실성 이슈에 대해 쉽사리 기술도용이나 해외유출이 확인된 것처럼 단정하고 여론을 몰아서 결과적으로 사법적 절차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중요한 헌법원리로 존중되고 있는 절차상의 적법절차(Due Process)를 무시하고 추측과 편견으로 당사자가 법 앞에서 정당한 심판을 받기도 전에 현실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힌다면 그것은 공정한 처사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법 앞에서의 평등과 공정의 의미는 충분한 법적 심리절차를 거쳐 권능 있는 법정에 의해 유죄로 판결되기 전까지는 누구나 무죄로 간주해야 하는 대원칙(Presumed Innocent)에 있다. ‘법원에서의 하루(A Day in Court)’를 거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과잉반응함으로써 결과에 있어 더 큰 사회적·산업경쟁적인 피해가 일어나게 하는 것은 적법절차와 공정성을 기하는 일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상의 공정성이 문제시되는 사례가 어디 정보통신 분야뿐이겠는가 마는 지금 IT업체간에 공정한 경쟁을 추구함이 국익에 긴요하며 이 분야에서 먼저 법치주의의 정신을 고취하는 것이 산업사회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까닭에 이를 강조하는 것이다. 요컨대 내용상의 잘잘못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무 관계를 판단하는 과정과 절차에 공정성이 요청된다는 얘기다. 결과도 합당해야 하겠지만 절차가 합리적이라야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대기업과 소기업 사이의 일인 경우 경쟁력이 약한 소기업의 이러한 행위를 법적으로 징벌한다고 해도 절차상의 공정성이 결여돼 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승복이 어렵고 산업사회의 오해와 의구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쟁으로 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법의 맹목적 적용에 앞서 사회정의와 공정성의 실현이라는 상위규범이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