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유쾌한 IT 장의업

◆김경묵 경영기획실장 kmkim@etnews.co.kr 

 유력 IT전문창투사를 맡고 있는 K대표와 모처럼 식사를 했다. 그동안 투자한 업체들의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연락도 제대로 못했다는 인사와 함께 그가 꺼낸 본론은 그래도 투자얘기였다.

 여력이 많진 않지만 캐피털 생리상 투자는 해야 하는데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아이템도 마땅치 않아 고민이라는 게 요지였다. 또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이 투자한 50여개 IT벤처가 지금 어떻게 망가져가고 있는지에 대해 식사시간 내내 장황하게 설명했다.

 다 듣기까지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일단은 반가웠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벤처시장에 그래도 투자처를 찾는 자금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밥값 반 화답 반의 의미로 지금이라도 모바일 분야나 아웃바운드 보안 분야 정도는 해볼 만하다는 대답을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정작 입에서 나간 말은 엉뚱하게 ‘IT장의업’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반농으로 알아들은 K사장이 웃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듯싶다. IT인큐베이팅(출산)을 본업으로 하는 창투사에 정반대의 장의업은 누가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웃는 얼굴에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요즘 당신이 주로 하는 일이 뭐냐고. 결국 투자한 50여개 업체의 뒤치닥거리가 주업무 아니냐고. 그것도 당신 표현을 빌리자면 뇌사상태에 빠진 업체가 부지기수인데 ‘염’을 잘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뇌사상태에 빠진 업체들 하나 하나를 가만히 뜯어보면 건강한 부분(특화기술)이 있다. 심장(솔루션)이든 눈, 팔(서비스)이든 그것들을 모아 새롭게 건강한 인간을 만들면 된다. 그 모든 장점을 모은 새로운 업체를 만들 수 있다면 좋은 가격에 외국에 매각도 가능하고 국내에서 얼마든지 다시 한번 사업 기회를 볼 수도 있다. 마치 어릴 적 갖고 놀던 합체형 변신로봇처럼 장의업은 매우 유쾌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건강한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는 안목과 죽어가면서도 장기 기증을 꺼리는 환자들의 마인드인데 이 역시 당신이 관리해온 환자라는 점에서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 같은 작업은 구조조정전문회사(CRC)들이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망가져가는 회사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당신네 회사가 수술집도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산부인과 의사라고 해서 응급환자를 외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산부인과 의사 일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뻔히 안고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일도 급하다는 취지를 누누이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읽어내고 그것에 대응하는 힘이지 현재의 위치가 아니다. 어차피 내년 상반기까지는 업계 전반에 걸쳐 강도있는 구조조정작업이 불가피하다. IT시장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많기 때문이다. 어줍잖은 내공의 고만고만한 업체로는 어림없다. ‘6백만불의 사나이’ 같은 초절정 고수를 만드는 노력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기다. IT장의업은 죽어가는 이의 시신을 수습하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위한 의미있으면서도 유쾌한 일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