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위성도시인 브리스톨에서 현지 애니메이션산업을 취재하던 기자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국제적인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구 70만명 정도의 중소도시인 브리스톨은 아드만을 비롯해 BBC애니메이션제작소·A프로덕션 등 영국의 메이저 애니메이션업체 상당수가 모여 있는 애니메이션 특화도시다.
애니메이션업체인 볼렉스브러더스의 앤디 레이턴 프로듀서는 “최근 국제전시회에서 본 한국 3D 애니메이션의 수준은 세계 최고”라며 “한국 애니메이션업체들과의 공동제작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 서부잉글랜드개발청의 다피드 윌리엄스 개발담당 매니저는 “브리스톨의 중심가에 대형 애니메이션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라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추진하고 있는 유럽사무소를 이곳에 세워달라”고 당부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당초 한국을 애니메이션 하청제작국 정도로만 인식할 것이라는 예상은 취재를 통해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이 애니메이션 선진국인 영국에서도 인정받는 수준에까지 올라왔다고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런던 문화예술 중심지인 피카디리에 위치한 세계 굴지의 문화상품 전문매장인 HMV를 방문하면서 일시에 무너졌다. 500종 이상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진열돼 있는 이 매장에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은 95년도에 제작된 ‘Red Hawk(붉은 매)’ 하나밖에 없었다. 이나마 일본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망가(Manga)’ 코너에 놓여 있었다. HMV의 애니메이션코너 담당 점원도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줄은 전혀 몰랐다”며 “남한과 북한 가운데 어느 국가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동안 정부는 문화콘텐츠산업을 21세기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국제적인 전시회에 한국관을 마련해 참가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국내 업체들이 많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방송사들은 국산 애니메이션 방영시간을 계속 축소하고 있으며 극장 측에서도 상영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여건은 국내 업체들이 많은 작품을 창작하려는 의지를 꺾고 있다. 올해 개봉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마리이야기’ 한 편이라는 점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외국 중심으로 쏠려 있는 애니메이션산업 육성책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