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지난해 7월 스킬랴로프 체포 당시, 미국의 프로그래머들이 스킬랴로프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저작권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미국에서 기소된 러시아 소프트웨어 회사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17일(현지시각) e북의 저작권 보호장치를 풀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작,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러시아 엘콤소프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이에 따라 영화·음반업체 등 저작권 소유자의 이익을 지나치게 반영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CMA)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 것으로 보인다.
엘콤소프트는 미국 어도비가 제작한 e북의 복제 방지 장치를 크래킹해 파일을 복사하거나 다른 컴퓨터로 전송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인터넷에 공개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디지털 저작물의 저작권 보호 장치를 우회하는 기술의 개발·판매는 98년 제정된 DCMA에 의해 금지돼 있다.
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문제의 소프트웨어는 불법이지만 엘콤소프트는 법을 어기려는 의도가 없었으므로 무죄”라고 선고했다. 또 DCMA 규정의 모호함 때문에 엘콤소프트가 자신들 행위의 위법성을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는 점도 무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에선 이러한 소프트웨어가 불법이 아니다.
2주간 계속된 심리에서 엘콤소프트가 무죄 선고를 받음에 따라 1년 넘게 끌어온 이번 사건은 종결됐다. 사건의 발단은 미국 사법당국이 지난해 7월 열린 해커 회의 ‘데프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온 프로그래머 드미트리 스킬랴로프를 체포한 것. 엘콤소프트의 직원으로 어도비 e북의 크래킹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인터넷에 올린 그는 어도비의 신고로 미국에서 체포됐다. 그러나 프로그래머들이 이 조치에 강력 항의함에 따라 스킬랴로프는 석방되고 대신 엘콤소프트에 소송의 칼끝이 겨눠졌다.
이번 판결로 디지털 저작권 보호 장치를 깰 수 있는 제품의 판매를 금지한 DCMA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프로그래머들은 이 법이 자유로운 과학기술 연구와 토론을 가로막는다며 반대하고 있다. 또 앞으로 DCMA에 근거한 형사 고발도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사사건과 달리 형사사건에선 한번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엔 항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