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게임 시장을 선도해온 일본이 새로운 시련과 도전의 무대에 서고 있다.
닌텐도가 세계 최초로 가정용 게임기인 ‘패밀리컴퓨터’를 내놓은 이래 게임은 세계 주요 산업분야로 성장했고 일본은 항상 그 선두에 서왔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10년 불황 속에 일본 게임시장이 97년부터 그 규모가 줄어들고 있으며, 또 외국 소프트웨어업체들의 공세가 높아지면서 일본 게임 업계가 위기 의식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2위 게임소프트웨어업체인 닌텐도, 세계 1위 하드웨어업체인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는 물론 고나미, 스퀘어, 에닉스 등 일본내 주요 게임제작업체들이 세계 최강자로 거듭나기 위해 변신 노력에 보다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련을 견디는 닌텐도=일본 게임업계 안방마님격인 닌텐도에 올해는 시련의 해다. 이는 실적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9월 중간 결산을 보면 매출 2080억엔(약 2조800억원), 당기순익 189억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올린 2257억엔 매출에 343억엔 순이익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닌텐도가 지난해 내놓은 가정용게임기 ‘닌텐도 게임큐브’는 약 700만대(전세계 기준, 9월말) 판매에 머무르면서 올해 발매 2년만에 4000만대를 넘어선 SCE의 플레이스테이션2(PS2)에 비해 ‘마이너’ 대우를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게임업계 신인인 MS의 X박스가 약 400만대를 판매하며 닌텐도를 넘어설 태세다.
다른 한편에선 ‘게임보이 어드밴스트’를 가지고 세계시장 약 98%를 점유하며 독점하고 있는 휴대형 게임기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나섰다. 세계 최대 이동전화단말기업체인 노키아가 지난달초 전화 기능이 있는 휴대형 게임기인 ‘N게이지’를 발표하며 게임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게임큐브의 고전에 대해 업계에서는 DVD 재생기능이 있는 타 게임기에 비해 다목적성에서 뒤진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게임을 위한 게임기’라는 닌텐도의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 게임소프트웨어가 재미있어서 게임기를 사도록 만든다는 게 여지껏 닌텐도의 자랑이자 방침이다.
닌텐도의 자부심이 성과를 낼지는 이번 연말 시즌에 달려있다. 게임업계 최대 판매기간이자 격전기간인 이 시기에 게임큐브용 게임들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게임큐브 판매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만약 이 기간동안 게임큐브의 보급이 예상만큼 이뤄지지않는다면 게임제작업체들도 더이상 10억엔(100억원) 이상드는 대작게임을 게임큐브용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승자이면서도 새롭게 도전하는 소니=SCE는 지난 3월과 9월에 각각 게임업계 최초 매출 1조엔(약 10조원) 달성과 PS2 4000만대 판매라는 축배를 들었다. 또한 일각에서 얘기되던 MS와의 한판 승부도 아직까지는 싱거운 판정승으로 기울고 있다. 9월 결산에서도 매출이 4035억엔, 영업이익이 273억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매출 3977억엔, 영업이익 9억엔보다 증가세를 보이며 호조를 보이고 있다. SCE는 이런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기보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SCE는 최근 PS2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 텔레비전을 통해 신작 게임정보, 미니게임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내년 봄부터는 동영상도 제공할 계획이다.
‘게임기에서 콘텐츠 수신단말기로의 변신’이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경쟁상대는 닌텐도나 MS가 아닌 인터넷접속 및 콘텐츠제공업체다. 이미 마쓰시타와 야후재팬은 각각 브로드밴드를 이용해 네트를 경유한 콘텐츠를 텔레비전에 제공하는 시범서비스를 하고 있거나 본서비스 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다른 한편 ‘포스트 PS2’전략에 고심하고 있다. SCE측은 그동안 ‘PS2의 연장선 위에서의 PS3 개발은 없을 것’이라고 얘기해왔다. 이미 SCE는 미국 IBM, 일본 도시바와 공동으로 차세대 반도체 ‘셀(cell)’을 개발중이며 이를 통해 획기적인 네트워크화가 가능한 게임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
◇승자로 거듭나기 위해 부산한 일 소프트웨어업체들=게임 소프트웨어시장만 놓고 보면 일본은 세계 최고가 아니다. 세계 소프트웨어시장의 약17%를 점유하며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곳은 미국 일렉트로닉아트(EA)다.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는 닌텐도와 소니를 제외할 경우 2위그룹은 세계 시장점유율 8∼9%대인 미국 액티비전, THQ, 테이크2 등 3개사다. 그 뒤를 잇는 6∼7% 점유율의 3위그룹권에서야 프랑스 인포그램과 함께 일본 고나미가 얼굴을 내미는 정도다.
사실 일본 업체에는 일본 국내 시장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97년 이후 일본 시장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반대로 게임 대작화의 진전으로 제작비는 급상승하는 시련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선택사항에 불과했던 해외 진출이 이제는 모자라는 일본내 매출을 보완하기 위한 필수사항으로 대두되고 있다. 세계 시장 무한 경쟁을 앞에 두고 일본 게임업체들은 기획·제작뿐아니라 자금·브랜드·마케팅 능력을 갖추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최근 들어 세계 시장에 도전하기 위한 일본내 주요 축이 비교적 뚜렷한 윤곽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표참조
우선 고나미가 한 축을 짊어지고 나섰다. 2년전 일본내 대형 완구업체인 다카라의 최대 주주로 확장노선을 걷기 시작한후 고나미는 지난해에 전통의 게임업체 허드슨에 자본 참여, 그룹 일원으로 편입시켰다. 올해 1월에는 중견 게임제작업체인 겐키에 출자, 역량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일본내 게임소프트웨어 판매 개수 기준 각각 4, 5위 업체인 스퀘어와 에닉스가 지난달말 합병에 합의해 또다른 축을 형성했다. 에닉스의 ‘드레곤퀘스트’, 스퀘어의 ‘파이널팬터지’는 시리즈 출하개수로는 각각 일본내 1위와 2위다. 이번 합병은 북미와 유럽시장에서 각각 장·단점을 가진 양사가 상호 보완해 세계 시장에 도전하기 위한 것으로 업계에선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남코와 캡콤이 시장 재편 바람을 타고 각각 몸집 불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양사 모두 세계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필요할 경우 자신들이 갖지 못한 강점을 가진 업체를 인수할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게 확산되고 있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hcs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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