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정보통신부는 올해 초부터 사업자와 연구소 전문가들과 함께 인터넷전화(VoIP)라는 새 서비스를 담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 1년 가까이 검토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적인 수준의 방향제시만 이뤄졌을 뿐 정작 번호부여와 망 이용대가 산정, 무선역무 포함 등의 관심사는 안갯속이다.
“데이터와 음성의 통합, 유선과 무선의 통합, VoIP기술에 대한 검증, 사업자간 첨예한 이해관계 등 거대 이슈가 얽힌 문제라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정통부의 설명은 수긍할 만하다.
그런데 담당부서는 이처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는’ 정책을 실질적으로 연구하는 담당 사무관을 올해에만 벌써 세번이나 교체했다. 그 중 인사이동에 따른 불가피한 경우는 단 한번 뿐이었다. 정책기조의 연속성에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민의 통신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번호정책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어졌다. 흔하디 흔한 공청회 한번 없이 유선·무선 등을 하나의 체계로 묶은 9자리 통합번호체계라는 정책 방침을 툭하니 던져놓은 것. 전화번호를 변경하는 중대사를 내놓기엔 마뜩찮은 과정이다. 수년째 일관된 기조로 번호정책을 연구해온 전문가집단인 번호전담반의 검토도 생략됐다.
이용자에 기본적인 정보를 알리는 식별번호체계의 의미와 교환기의 기술적 단계 등의 요소를 면밀히 살피지 않았음은 명약관화다. 관련 전문가와 정책담당자까지 곤혹스러워하는 가운데 정책 연구보고서 작성을 막바지 작업중이라는 후문이다.
여러가지 폐해가 지적됨에도 나라마다 관료제를 유지하는 것은 행정전문가에 의한 정부정책의 안정성과 지속성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터넷·통신강국으로 뛰어오른 것이나 21세기 지식정보강국을 꿈꾸게 된 데는 관료조직인 정통부의 꾸준한 정책기조가 뒷받침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관료조직이 아마추어 수준의 대응에 머무른다면 반대로 꾸준히 민간의 발목을 잡게 된다. 정책 기조의 연속성이라든지, 정책 입안과정의 신중함 등이야 말로 행정전문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능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