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IT전시회 찬바람

 연극배우의 무대였다. 검투사의 콜로세움이었다. 오늘날 컴덱스가 바로 그렇다. 세빗(CeBIT)이나 CES, 맥월드, 인터넷월드도 마찬가지다.

 가전제품이 자태를 뽐내고 컴퓨터나 통신기기가 기량을 겨뤘다. 유명한 배우나 투사에게 환호와 갈채가 따랐듯 훌륭한 제품에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들의 무대는 바로 전시장이었다. 전시장은 그렇게 해서 사람을 모으고 덩치를 키웠다. 수백년, 수천년은 아니었지만 수십년은 호시절을 보냈다. 바로 그곳에서 첨단 제품은 존재가치를 공인받았다. 생산자나 개발자, 소비자 모두에게 그것은 필요한 자리였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예전과 같지 않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터 전문가들에게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은 성지순례와도 같았지만 이젠 옛날 얘기 처럼 들린다. 그 당시는 인터넷이 대중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인용컴퓨터(PC)와 주변기기 등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각종 정보기술(IT) 관련 제품에 대한 최신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는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PC 등 IT관련 분야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통업체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 상담을 한 후 뒤풀이를 벌이는 등 축제의 공간을 제공했던 IT전시회들이 속속 출현해 90년대에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지난 2000년부터 전세계 IT업계가 최악의 불황을 겪으면서 전시회 사업환경도 180도 바뀌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전시회 전문잡지 ‘트레이드쇼위크(TSW)’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던 IT관련 대형 전시회 수십개가 무더기로 취소될 것이 확실시된다.

 더욱이 이들 중에는 미국 PC전시회의 양대 산맥으로 인기가 높았던 컴덱스(COMDEX)와 맥월드는 물론 세계 최대 인터넷 전시회인 인터넷월드 등도 포함돼 관련업계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 중에 6일부터 10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맥월드의 경우 최대 후원업체인 애플컴퓨터와 전시회 개최도시 등을 둘러싸고 최근 심각한 갈등을 빚어 매년 세 차례씩 열던 전시회 횟수와 규모를 올해부터 대폭 축소할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코앞에 닥친 ‘여름 전시회(보스턴)’ 개최 여부도 아직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최악의 경우 애플컴퓨터가 보스턴 전시회 참가를 완전 보류할 경우 이번 전시회를 끝으로 IDG가 주최하는 맥월드가 완전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애플컴퓨터는 최근 대안으로 주관회사를 바꿔 맥월드를 자체 행사로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컴퓨터 유통업체들의 전시회(computer dealers’ exposition)’를 의미하는 컴덱스(COMDEX)의 추락은 더욱 극적이다.

 키3미디어가 주최하는 컴덱스는 IBM이 첫 호환PC를 내놓던 지난 79년부터 전세계에 있는 컴퓨터 제조 및 유통업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해 미국 IT전시회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컴덱스는 90년대 말 컴덱스라스베이거스를 모델로 삼아 전세계 20여개국에 진출하는 동시에 미국 시카고와 뉴욕, 캐나다 밴쿠버·몬트리올 등 북미지역 10여개 주요 도시로 지역 전시회를 확대한 것이 화근이 돼 최근 큰 어려움에 처했다.

 키3미디어는 2000년부터 지역 전시회에 참가하는 업체 수가 격감하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올해부터 국가별 하나의 전시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전시회는 대부분 취소한다고 최근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미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컴덱스시카고를 비롯해 뉴욕, 캐나다 밴쿠버·몬트리올 등 약 10개의 전시회는 구경할 수 없게 됐다.

 더욱이 관련업계에서는 최근 키3미디어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는 등 부도위기에 몰린 것을 감안하면 11월 개최되던 컴덱스의 대명사 라스베이거스 전시회도 제대로 열리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취소된 컴덱스 전시회 일정에 맞춰 신제품을 발표할 계획을 세웠던 전세계 IT관련 업체들의 마케팅 활동에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90년대 인터넷 관련업계 성장을 지켜봤던 ‘인터넷월드’` 전시회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펜턴미디어가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했던 인터넷월드의 참가업체 수는 126개를 기록해 인터넷 투자가 한창이던 2000년(700여개)에 비해 5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또 관람객 수도 같은 기간 4만여명에서 1만5000여명으로 격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인터넷월드도 곧 존폐기로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IT관련 전시회들이 모두 고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주 후반(9∼12일) 가전산업협회(CEA)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전전시회(CES)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출품업체 수가 늘어나는 등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따라 CEA는 이들 업체를 수용하기 위해 올해 전시장 면적(120만제곱피트)을 지난해보다 약 10% 늘렸으며 올해 전시회 기간 12만∼13만명의 관람객들이 전시회장을 찾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CES의 성공요인을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트레이드쇼위크의 마이클 휴 사장은 우선 최근 IT가 가전과 통합하는 정보가전이 새로운 주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외부적인 상황이 IT불황을 비켜갈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CEA는 전세계 IT 및 가전분야 1000여개 회사를 회원사로 거느리고 있고 이들이 주로 CES에 출품하기 때문에 경기변동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것도 불황극복에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