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일본-올 IT산업 전망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03년 일본 정부 주요 IT관련 예산

 계미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일본 정보기술(IT)산업은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미즈호은행, 도쿄미쓰비시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 빅3 은행을 중심으로 한 불량채권 문제가 경제 전반에 걸쳐 여전히 일본 경제를 질펀한 늪으로 몰아가며 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발 IT벤처 육성이라는 성장엔진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이 마냥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유비쿼터스 사회구현’ ‘과학기술창조 입국’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일본 IT분야에서 눈여겨봐야할 대목을 몇가지로 정리했다.

 ◇과학기술입국에의 희망=일본의 희망은 오직 ‘과학기술’에 놓여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를 반영하듯 일본 정부는 전체 예산이 긴축에 들어갔지만 과학기술 관련 예산만큼은 지난해에 비해 3.9% 늘린 1조2298억엔으로 잡아놓고 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입각 후 줄곧 ‘과학기술창조입국’을 입에 달아왔으며 이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이런 일본발 희망의 배경에는 노벨상 수상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천문학 관측의 새로운 장을 연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명예 교수가 물리학상을, 다나카 고이치 시마즈제작소 연구원은 화학상을 각각 수상했다. 두 명 동시 수상은 일본에서 처음 있는 경사로, 3년 연속 수상이라는 기록도 거머쥐었다.

 특히 단백질 해석방법을 개발해 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의 열풍은 신드롬 그 자체였다. 박사학위조차 없는 평범한 기업 연구자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노벨상 행진’에도 버블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를 포함해 최근 몇년간 노벨상 수상 대상 연구성과는 모두 80년대 버블기에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돈 걱정없는 기업들이 막대한 연구비를 투여한 대가가 지금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제는 브로드밴드로 돈을 번다=일본은 더이상 IT 인프라 후진국이 아니다. NTT도코모의 무선인터넷서비스인 ‘i모드’를 비롯해 광통신망(FTTH), ADSL 등 광대역망(브로드밴드) 역시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특히 ADSL의 경우 2001년 12월 150만건이었던 가입자수가 2002년 11월말 510만건으로 급증해 지난 일년 내내 브로드밴드 붐을 이끌었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계속 이어져 올해 상반기 중에 ADSL, 케이블TV망, FTTH 등 브로드밴드 보급은 1000만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해 본격 개화를 시작한 FTTH가 얼마만큼 호응을 받을지도 관심거리다. 일본정보처리개발협회(JIPDEC)가 ‘정보화백서 2002’에서 2005년까지 ‘FTTH 1000만 세대 달성’을 예상하는 등 FTTH에 대한 일본내 기대가 날로 고조되고 있다. 브로드밴드가 1000만 시대를 맞이하는 만큼 이에 걸맞은 서비스 제공이 올해 인터넷 비즈니스의 최대 화두가 될 전망이다.

 이미 소프트뱅크그룹이 브로드밴드를 이용한 케이블방송 서비스를 올 1월부터 개시한다고 선언해 놓고 있다. 여기에 소니가 게임기의 브로드밴드화와는 별도로 콘텐츠 제공 사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을 것으로 전망돼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을 준비하는 캡콤의 한 집행이사는 “한국이 500만을 기점으로 개화했지만 일본의 경우 1500만은 있어야 한다. 단순 수치보다 보급 비율이 더 중요하다. 일본은 한국보다 인구가 3배가 많다”고 지적했다.

 ◇카메라 내장 이동전화단말기 이제 해외로 줄달음=일본 이동전화단말기 업체들은 지금까지 국내용 제품 생산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두 가지 청신호가 켜졌다. 바로 3세대(3G) 이동전화 서비스와 사진전송 서비스다.

 이동전화단말기 자체만 놓고 보면 일본 메이커는 이미 세계를 압도한다. 일본삼성의 한 관계자는 “컬러, 화음 등 단말기 품질에 대한 일본 소비자의 입맛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일본 진출에 대해서는 아직 검토중”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만큼 일본 메이커들이 품질면에서 앞서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 단말기업체들은 일본 규격이 세계 표준과 다르다는 치명적 약점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NTT도코모가 2001년말, J폰이 2002년말 각각 3G서비스를 개시함에 따라 이를 통해 경쟁력을 배양한 일본 단말기 업체들이 올해부터 세계를 타깃으로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3세대 이동전화 서비스를 선보인 NTT도코모의 ‘포마’가 고전을 거듭하고 있긴 하지만 단말기업체들은 이에 따른 시행착오를 통해 노하우를 쌓아왔다.

 ‘사진전송 서비스’ 또한 일본 단말기업체들의 올 한해 최대 무기중 하나다. J폰이 700만 가입자를 확보하며 시장에서 돌풍을 몰고온 사진전송 서비스는 이후 NTT도코모, KDDI가 잇따라 서비스를 개시하며 일본내 주류 서비스로 자리잡았다. 여기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미 샤프가 지난해말부터 유럽 보다폰에 카메라를 내장한 이동전화단말기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일본 이동전화단말기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문을 두드리는 도전의 해가 다가온 것이다.

 ◇NTT그룹은 영원하다=사실상 일본 통신업계를 지배하는 NTT그룹에 있어서 올해는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될 것으로 보인다. 통신 서비스 분야별로 확고한 1위이거나 독점적 시장지배자인 NTT그룹에 소프트뱅크, 도쿄전력 등이 정면 도전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국영 전화망 사업자로서 출발한 NTT는 여전히 일반전화서비스분야 비중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지난해 최초로 이 부문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신규 서비스를 개발해야하는 NTT는 인터넷전화, ADSL, FTTH 등을 차기 수익원으로 내걸었다. 먼저 ADSL분야가 위험하다. 일본 ADSL시장(2002년 9월 기준)은 소프트뱅크그룹의 BBT(23.9%), NTT동일본(22.2%), 서일본(18.7%)으로 이미 1위 자리를 빼앗겼다. 더욱이 월간 가입자수에서 소프트뱅크는 41.7%로 NTT동·서일본을 합친 33.3%을 넘어서고 있다. 이런 추세는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올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FTTH에서도 아직 NTT가 60%를 손에 넣고 있지만 도쿄전력 등 전력계 업체의 공세가 거세다. 지난해 4월에 68.7%였던 점유율은 지난해 하락 경향을 보였다. 특히 올해에는 도쿄전력이 전력계 연합군인 파워드컴에 합류해 힘을 배가시킬 예정이어서 양방의 격전이 주목된다.

 인터넷전화에서도 소프트뱅크가 70만 회원을 확보하며 1위로 치고 나가고 이를 힘겹게 따라가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하지만 지배적 망사업자라는 확고한 지위를 가진 NTT가 올해 ‘작심하고 뛰어들면’ 이같은 판세를 한번에 뒤집을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올해 통신시장은 통신공룡 NTT의 진짜 저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대형 전기전자메이커, V자형 회복에 어두운 그림자=일본 IT의 힘을 대표하는 히타치, 소니, 마쓰시타 등 대형 전기전자메이커가 올해 ‘V자형’ 회복을 이룰지 여부도 새해벽두부터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최악의 실적을 보인 일본 메이저 9대 업체들은 이를 V자형 회복을 위한 구조조정 비용 탓으로 돌렸다. 또한 당시는 아직 일본 메이저들에 2000억∼4000억엔(약 2조∼4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흡수할 여력이 남아있었다.

 이에 따라 올 3월 회계연도에서 내보일 성적표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로서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지난해 9월 중간결산에 비춰보면 마쓰시타가 호조, 도시바와 미쓰비시가 보통, 히타치와 후지쯔가 여전히 고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간결산 발표자리에서는 지난해 3월에 보인 V자형 회복 자신감은 온데 간데 없고 오히려 당초 매출 및 수익 예상치를 하향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메이저업체의 한 고위 관계자는 “V자형이 아닌 완만한 형태의 회복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 전체적으로는 급반전해 막대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도 최소한의 흑자는 낼 수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올해도 천문학적 적자가 누적된다면 아무리 자산이 탄탄하기로 소문난 이들 메이저들이지만 ‘침체’가 아닌 ‘침몰설’이 부각될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유비쿼터스 붐이 인다=일본내 한 조사기관이 발표한 올해 10대 키워드 예상에 ‘유비쿼터스’가 들어가 있다. 이 조사는 단지 기술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문화를 총괄한 순위였기 때문에 ‘유비쿼터스’가 10대 키워드로 선정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본 언론들도 서서히 ‘유비쿼터스’ 붐 조성에 나서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유비쿼터스와 관련해 트론 개발자인 도쿄대학 사카무라 겐 교수를 전면 인터뷰하는가 하면 업계 전문지들이 신기술 소개시마다 ‘유비쿼터스’를 언급하는 등 주요한 테마로 다루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도 올해 예산에 최초로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기술개발이라는 신규사업을 만들어 약 25억엔을 투자한다.

 각종 일본내 전시회에서도 ‘유비쿼터스’를 주요 테마로 선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는 일본의 새로운 희망으로 유비쿼터스가 일본인들에게 각인되는 원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