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PC업체와 코스닥

◆정보가전부·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지난해 말 코스닥 등록을 추진했던 한 PC업체는 코스닥위원회의 보류 이유 설명을 듣고 심한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01년에 9억원의 순이익을 냈으며 지난해 상반기까지 20억원의 흑자를 기록중이어서 충분히 등록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코스닥 위원회는 “향후 성장엔진이 부족하고 동종업계가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는 만큼 2002년 하반기 이익을 지켜보고 다시 신청하라”고 보류를 결정했다. 언뜻 보기에는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해당 업체에서는 “PC업체기 때문에 코스닥 등록이 어렵다”는 얘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였다. 해당업체는 내년 상반기 다시 코스닥 등록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예전과 같이 열정적으로 직원들이 일을 할지 우려하는 모습이다.

 PC업체들은 반발하겠지만 ‘PC업체이기 때문에 코스닥 등록이 안된다’는 말은 어쩌면 국내 PC산업의 현주소를 정확히 표현하는 용어일지도 모른다. 기술 개발은 더 이상 안전에도 없고 고객들에게 제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기법도 사라진 지 오래다. 작년에는 모든 PC업체들이 가격인하로 소비자를 유인하는 데만 치중했다. 그 결과 출혈경쟁으로 이어졌고 많은 PC업체들이 쓰러지기도 했으며 살아남은 기업들은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동종업체간 동료의식보다는 서로 잡아먹지 못하면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장으로 변했다. 결국 이러한 이전투구는 전체 PC산업의 경쟁력 강화보다는 PC산업을 싸잡아 내려보는 동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PC업계의 한 사장은 “PC업종이 서울의 대형 갈비집만도 못한 처지로 전락했다”며 “PC를 많이 팔면 팔수록 손해를 더 보는 시장이 돼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이제 PC업체들은 사고의 틀을 바꿀 때가 온 것 같다. 물론 PC산업이 표준화가 진전되면서 후발업체들과 선발업체들의 기술격차가 줄어들고 가격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공정한 룰을 지키지 않는 방식의 경쟁은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보다는 공멸한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꼈다는 점에서 공정한 룰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