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료전지연구센터장 oih@kist.re.kr
지난달 2일 일본에서는 조용하지만 중요한 ‘과학기술적’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일본 총리관저에서 도요타와 혼다가 각각 연료전지자동차 한대씩을 정부에 임대 형식으로 전달하는 행사가 거행됐고,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시승식을 한 것이다. 이 차들은 앞으로 총리·경제산업장관·국토교통장관·환경장관의 공식차량으로 사용될 예정이며, 향후 3년간 정부공용차량은 모두 이 환경친화적인 연료전지자동차로 교체되는 것으로 돼 있다.
일본은 이로써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연료전지자동차를 판매하기 시작한 첫번째 나라가 됐다. 다음날 도요타는 캘리포니아대학에 6대를, 혼다는 로스앤젤레스 시청에 1대를 임대해 주었으며, 이러한 연료전지자동차는 또한 미국정부가 상업화를 승인한 첫번째 연료전지자동차가 됐다. 지난 10여년간 차세대 신에너지인 연료전지에 대한 연구개발에 전력해온 일본은 이미 연료전지산업을 새로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신산업으로 규정하고 집중 개발중이다.
미국은 에너지부가 2002년 1월 연료전지자동차 개발 및 수소공급 인프라 기술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프리덤카(Freedom CAR)’라는 국가계획을 발표했다. GM·포드·다임러크라이슬러 등의 자동차회사와 국립연구소·대학이 함께 참여하는 이 계획에 부시 대통령은 2003년 예산으로 1억5000만달러를 신청했으며 연료전지자동차 개발에만 전체예산의 45%가 배정됐다. 유럽연합도 각 국가가 연합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제6차 프레임워크’ 프로그램 하에 미국·일본 등과 비슷한 연료전지자동차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조차 향후 5년 동안 연 10억위안(1400억원)을 투입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연료전지자동차를 선보인다는 야심찬 ‘863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고성능화 및 가격저렴화를 통해 2010년께 대중화를 이룩한다는 목표 아래 모든 나라가 앞다퉈 연료전지자동차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연료전지자동차가 기존의 내연기관을 대체할 수 있는 유력한 환경친화적 자동차이고 에너지 절약효과, 환경부하와 온실가스 저감효과, 에너지공급 다양화효과, 산업경쟁력 강화 및 신규산업 창출효과가 큰 미래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연료전지자동차 개발에 미래형자동차기술개발사업에서 기초연구 성격으로 연간 약 5억원을 할당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과 한국의 연간 연구개발 투자액비는 1400억원 대 5억원. 이 차이는 앞으로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것인지, 중국과의 자동차 기술격차 4년의 우위가 2008년에는 역전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지, 자못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BT·NT·IT 등 모두 중요하지만 수출 148억달러,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처럼 미비한 것에 대해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연료전지자동차와 같은 환경친화적 자동차를 개발하지 못하면 당장 몇년 후부터는 선진국에 자동차를 수출할 수 없다. 일례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2009년부터 초저공해 또는 무공해자동차밖에 판매할 수 없다.
도요타나 GM이 연구비가 없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신기술개발에 앞장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파급효과는 크지만 위험부담이 많은 분야에서 정부의 주도 하에 산·학·연이 공동으로 연구개발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숨가쁘게 전개되는 전세계적인 기술전쟁에서 자국이 신속한 우위를 점하도록 하기 위한 때문일 것이다. 10년 뒤 미국·일본·유럽·중국 등이 연료전지자동차를 생산하고 수출할 때 우리는 그때도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있을 것인가.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쌓아 올린 자동차 분야에서의 국제경쟁력을 5년 뒤나 10년 뒤에도 상실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신기술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연료전지자동차에는 과학이 있고 기술이 있고 산업이 있고 수출이 있고 환경이 있고 에너지가 있으며 그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국가 주력 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의 애정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