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반도체 업계에서 선두업체와 후발 업체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세계 최대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모습.
반도체 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수년째 계속되는 경기 침체 속에서도 각 분야별 일류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늘어만 가고 있어 후발 기업들 사이에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인텔, 메모리의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TSMC, 이동통신용 반도체의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등 분야별 1위 업체들은 지난해 후발 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 놓으면서 입지를 굳건히 했다.
시장 조사업체인 머큐리리서치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해 3분기 전세계 PC용 프로세서서 시장 점유율이 무려 86.8%에 달해 전년동기와 전분기보다 각각 7.6%, 4% 증가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AMD의 점유율은 11.6%로 하락했는데 이는 전년동기 20%, 전분기 15.6%보다 크게 줄어든 것이다.
또 시장 조사업체인 가트너데이터퀘스트가 지난해말 추산한 2002년 D램 업체별 실적을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년대비 56% 늘어난 49억9200만달러의 판매를 기록해 시장 점유율이 무려 30.8%에 달했다. 이 회사는 지난 92년 13.6%의 점유율로 처음으로 1위의 자리에 오른 이후 시장 점유율이 갈수록 늘어나 마침내 30%의 벽을 넘어섰다. 이에 비해 2위 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은 시장 점유율이 17.2%로 오히려 1.9% 하락해 삼성전자와의 격차가 13%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이밖에 대만의 TSMC도 지난해 1600억대만달러(약 46억달러)의 매출액과 230억대만달러(약 6억6000만달러)의 세금 제외 순이익을 기록해 파운드리 업계 부동의 1위임을 과시했다.
업계에서는 선두 업체들이 지난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기 때문에 앞으로 후발 업체들은 더욱 궁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인텔은 지난해 47억달러를 투자했으나 AMD의 투자액은 7억5000만달러에 그쳤다. 이에 따라 인텔은 실리콘웨이퍼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의 양을 더욱 늘리고 생산비용은 30% 이상 절감할 수 있게 돼 2위 업체인 AMD를 더욱 큰 차로 따돌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총 41억달러 규모의 설비투자를 했는데 이는 마이크론 투자규모의 4배가 넘는 것이다.
TI도 지난해 웨이퍼 장비 개선을 위해 8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했으며 이는 같은 업종의 내셔널세미컨덕터의 투자 규모 1억8500만달러를 4배 이상 웃도는 것이다. 이 회사는 사상 최악의 해였던 2001년에도 18억달러를 투자했었다.
올해에도 선후발 업체간 투자액 편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당초 예상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올해 35억∼39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또 시장 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가 주요 45개 반도체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투자전망에 따르면 삼성, TSMC 등이 각각 26억달러, 15억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데 비해 다른 후발 업체들의 투자액은 1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업계 전문가들은 앞으로 반도체 시장은 일류 기업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 국제자산관리의 선임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다카치오 다케히코는 “반도체산업은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는 도박성이 있는 산업으로 결국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기업만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세마테크의 사장 겸 CEO인 밥 헬름스도 “구리 인터커넥션 등의 최신 기술이 적용된 130㎚ 300㎜ 웨이퍼팹 건설에는 20억∼40억달러가 든다”며 “이같은 건설 비용은 연간 15%씩 증가하기 때문에 반도체 업계에 새로운 경제논리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매년 10억달러 이상의 자본투자가 가능해야 하는데 이를 충족시킬 반도체 업체는 극소수라는 지적이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