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원대 5조원.’
가구당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70%를 넘어서고 있는 세계 최대 인터넷 국가 대한민국과 초고속인터넷 접속 가구 20% 정도인 미국의 지난해 사이버보안 투자금액을 비교한 액수다.
공식적인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1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0명당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17.16명으로 미국의 4.47명을 훨씬 웃돌고 있다. 적어도 사이버세계에서만큼은 우리가 미국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파고들면 사뭇 다르다. 미국은 ‘과학·기술긴급동원법’ ‘연방정보보안관리법’ 등 사이버보안 관련 각종 법안이 즐비하다. 여기에서 더나아가 오는 3월이면 국토보안부가 출범, 사이버테러대책을 종합적으로 책임진다.
이에 비하면 우리 실정은 비참하기까지 하다. 보안투자액 차이는 고사하고 사이버관련 법·제도도 변변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 이번 사태에 처한 정보통신부는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보안 인프라 강화 및 보안분야 투자확대 대책을 내놓기는 했으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IT업계 르네상스의 초석’으로 업계 종사자들의 기대를 모은 ‘IT수석제’마저 물건너갔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말해왔고 적어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국가임을 자부해왔다. 그러나 이번 인터넷 마비사태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사이버보안과 관련한 사고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는 것은 물론 정책의 공조가 필요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꼭 IT수석은 아니어도 국가의 정보체계를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직책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종사자들의 지적이다.
더욱이 차기 정부는 인터넷을 도구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인터넷 마비사태는 새 정부에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다. 현체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이 속속 입증되고 있는 만큼 차기 정부는 이번 사태를 ‘IT한국’의 내실을 다시 한번 살피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제부·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