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접경지역에 자리잡고 싼 가격을 앞세워 미국에 가전제품 등을 생산·공급하던 멕시코 생산공장들이 최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거센 도전에 밀려 점차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멕시코에 자리잡고 있던 해외 기업들은 지리적 유리함을 살릴 수 있는 업종을 개척하는 등 변화된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티후아나 등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지역에는 ‘마퀼라도라스’라 불리는 대미 수출 위주의 생산공장들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일본의 전자업체들이 미국시장을 겨냥, 생산비용이 적고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에 대형 생산시설들을 운영해왔다.
세계적 불황이 닥친 2000년 이래 마퀼라도라스는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전성기에는 3700개에 달하던 마퀼라도라스 기업이 현재 3200개 정도로 줄고 25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멕시코 정부는 추산한다.
산요·캐논 등 대형 정보기술(IT)업체도 최근 멕시코 공장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통신·녹음장비업체들도 속속 이곳을 떠나고 있다. 의류·가구업체 등의 굴뚝산업들도 멕시코를 떠났다.
멕시코를 떠난 이들이 찾는 곳은 중국·베트남 등 인건비가 싼 아시아의 신흥 생산기지다. 이들 아시아 국가의 인건비가 멕시코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과 외국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각종 혜택도 외국 기업들의 중국행을 부추기고 있다.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후 NAFTA 역외 국가들에 관세 혜택을 줄 수 없게 되면서 아시아의 원재료나 부품 수입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타격을 입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아시아로 향하는 ‘탈멕시코’ 행렬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대신 멕시코는 미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는 한편 기술 발전을 꾀하는 등의 새로운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즉 장거리 수송을 하기에는 수지가 맞지 않는 대형 부품·제품에 집중하거나 미국 기업들의 긴급수요에 빠른 대응이 필요한 자동차부품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파이어니어의 경우 젊은 운전자들을 겨냥한 자동차용 대형 스피커에 주력하고 있다. 소형 스피커는 모두 중국 상하이로 옮기고 운송비가 많이 드는 대형 스피커만 미국 근처에 남겨놓은 것이다.
일부 기업은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약화된 가격경쟁력을 기술력으로 만회한다는 전략 아래 기술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의료기기나 군용제품 등보다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미국 샌디에이고와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교세라는 멕시코 공장의 기술력을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산요 멕시코 공장의 책임자이던 마누엘 가르시아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멕시코 산업도 이 위기를 넘기면 경쟁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기술 수준이 높지 않은 멕시코에서 첨단제품을 생산하려는 시도는 해외 바이어들에게 아직 큰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마퀼라도라스의 기업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기술 발전에 전력하고 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