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서태지, 이승엽, 이공계

◆이택 정보가전부장 etyt@etnews.co.kr  

 서태지와 이승엽에게는 닮은 꼴이 많다. 우선 속칭 사회적 성공의 잣대로 여겨지는 학벌이나 명문가 출신이라는 뒷 배경이 없다. 두 사람 모두 대학의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일찌감치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여느 한국의 젊은이들과는 다른 길이다. 그러면서도 둘은 20대 초반에 벌써 한국 최고의 스타자리를 꿰찼다. 서태지는 문화권력자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이승엽도 ‘국민 타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열린 사회의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서태지와 이승엽은 최근 또하나의 비슷한 기록을 세웠다. 바로 몸값 부문이다. 서태지는 모 이동통신업체의 광고출연 대가로 무려 30억원이 넘는 전대미문의 모델료를 받았다. 연예계 톱스타들의 모델료가 비싸야 5억∼6억원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아무리 서태지라 할지라도 놀랄 만한 수준이다. 이승엽 역시 우리나라 프로 운동선수 가운데 최고의 연봉 계약을 체결했다. 6억원에 몇천 만원이 ‘자투리’로 붙는다. FA선수 가운데 3∼4년 동안 계약료와 연봉을 합쳐 20억원 이상을 한꺼번에 챙기는 선수도 있다. 그래도 1년 단위의 연봉이 6억원을 훨씬 넘어선 것은 이승엽이 처음이다.

 ‘돈’은 가장 정확하다. 30억원 이상의 모델료와 6억원이 넘는 연봉도 이를 지급하는 회사가 있기에 가능하다. 기업이 어떤 곳인가.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이동통신업체도, 삼성구단도 그만한 반대급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3세대 이동전화서비스를 광고하는 그 업체는 벌써부터 서태지 효과가 나타난다고 싱긍벙글이다. 삼성 야구단 역시 이승엽의 스타성을 한층 강화, 시즌 오픈을 기다리는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억억 하는 세상이라지만 한번 차분히 따져 보자. 스타의 개런티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아주 특출한 한두 사람이며 기업 역시 투자대비 수익이라는 대차대조표에 플러스라는 계산이 나오는 이상 당연히 값어치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백분 이해한다 해도 연봉 2000만∼3000만원짜리 샐러리맨들에겐 속이 편치 않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정서적으로 그렇게 다가간다는 말이다.

 우리에겐 서태지와 이승엽 못지 않게 자신의 분야에서 천재성을 드러내는 전도양양한 젊은이들이 많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국민에게 꿈과 즐거움을 선사하듯 세계 최고의 제품, 최고의 기술자에 도전하는 인재들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연구계의 스타, 학계의 기린아로 성장할 예비 주역들에게도 연봉 6억원 이상의 몸값을 줄 수는 없을까.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가를 인정받고 있는 젊은 해외 과학자를 계약금 40억원에 연봉 7억원을 주고 스카우트했다는 기업은 왜 흔치 않을까.

 이공계 기피현상이 갈수록 심화돼 나라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원인이야 많겠지만 이공계를 나와서는 부와 명예, 권력을 얻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대 물리학과의 수재들이 고시촌을 들락거리고 공대출신이 의대에 편입학하는 일은 정상이 아니다. 젊고 건강한 우리 아이들이 스타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대책없이 연예계를 기웃거리는 것도 희극이다.

 젊은 엔지니어, 과학도들 중에도 서태지·이승엽처럼 스타가 되고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쥘 수 있는 신데렐라가 나와야 한다. 그것은 우리 정부, 기업의 몫이다. 이공계를 ‘죽이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