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미국-이라크전 하이테크 경기 충격 가늠 어렵다

 실리콘밸리 하이테크 업체에 이라크 전쟁 발발 가능성에 따른 경기 회복지연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들은 최근 2주간 실적부진을 이같은 ‘지정학적 긴장’ 탓으로 돌렸지만 전쟁 가능성의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전망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전쟁 전망이 경기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기보다는 미국 경제의 일반적인 불확실성 분위기를 높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새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대규모로 구매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돼 실리콘밸리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전미독립기업연맹(NFIB)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빌 던켈버그는 IT업계의 전쟁 탓에 대해 “현 경기침체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면서 “(고객들이) 장비를 오래 전에 많이 구입해 더 이상 필요 없을 뿐 전쟁과는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시스코시스템스, 델컴퓨터,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 등 대형 하이테크 업체들은 최근 분기 실적을 부분적으로 전쟁 공포 탓으로 돌렸다.

 시스코의 최고경영자(CEO)인 존 체임버스는 지난 4일(현지시각) 기업들이 대규모의 하이테크 제품 구입을 주저하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짙다고 지적했다. 샌타클래라에 본사를 둔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도 발표문에서 자사 1분기 주문이 전 분기 대비 20%가 아닌 35% 정도 격감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같은 전망의 절반은 ‘지정학적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자체 분석했다.

 투자은행의 분석가들도 전쟁이 발발할 경우 휴렛패커드(HP)의 주가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리먼브러더스의 분석가 댄 나일스는 “상존하는 전쟁 위협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통신 및 전자제품 신규 주문이 계속해서 어려울 것”이라면서 “불확실성이 지속될수록 최종 수요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0여개 하이테크 업체 관계자들은 최근 전쟁 위협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이들은 증시침체와 소비자신뢰지수 하락을 지적하면서 이라크전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기업의 설비투자가 위축되고 소비자들도 지출을 꺼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주일 동안 350여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던켈버그는 “전쟁 때문에 판매가 둔화되고 있다고 얘기하기는 쉽다”면서 “증시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되겠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라크전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구매나 투자 프로젝트를 유보할 것을 시사한 기업인은 못 봤다”면서 “손을 들어보라고 했지만 아무도 손을 안들었고 예를 들어달라고 했지만 이조차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UCLA앤더슨예측연구소의 소장 에드워드 리머는 “경기침체 원인으로 이라크전 가능성을 탓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의 견인차가 없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수요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 경기침체와 확장은 소비지출을 후행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경기침체는 99∼2001년의 하이테크 거품 붕괴 이후 기업투자가 격감한 데 따른 것이다.

 제3의 수요 원천인 정부도 특히 주 및 지방정부들이 적자재정에 직면하면서 지출을 억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이 지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실리콘밸리에서 생산되는 하이테크 장비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심리적인 요인을 꼽는 전문가도 있다. 정확한 진단은 어렵지만 컴퓨터 연도인식 오류 문제(Y2K) 이전이나 9·11 미 테러사태 이후와 마찬가지로 온갖 불확실한 주장과 소문이 바이러스처럼 확산돼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는 얘기다.

 멘로파크에 있는 시장조사업체 트렌드매크로리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도널드 러스킨은 하이테크 업계가 지난 2년 동안에 견줘 호전되고 있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많은 하이테크 업체들의 수익성이 2000년 말 이후 처음으로 3분기 연속 개선되는가 하면 주가도 급락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러스킨은 “전쟁에 대한 우려는 분위기를 설명하려는 일반적인 시도”라면서 “경제의 영역은 감정의 영역이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코니박기자 cony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