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사무총장 chyim@tta.or.kr
지난해 일본에 갔을 때 후지쯔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본사의 전시관 한 가운데에 동상이 하나 있었다. 후지쯔 창업자의 동상쯤으로 생각했는데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니 놀랍게도 후지쯔 컴퓨터를 최초로 설계한 기술자의 동상이었다. 기술과 기술자를 존중하는 후지쯔 회사 경영진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느꼈다. 요즘 이공계를 기피하고 천시하는 우리나라 풍토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상의 주인공은 이케다였다. 그는 도쿄공업대를 졸업하고 이 회사에 입사해 컴퓨터를 거의 혼자 설계했다고 한다. 그가 만든 설계도에 따라 컴퓨터를 1954년에 최초로 생산했다고 한다. 후지쯔가 IBM과 경쟁하며 컴퓨터 메인프레임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한 사람의 뛰어난 기술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가 직접 손으로 그린 설계도와 복잡한 수식도 함께 전시돼 있었는데 그 정교함은 예술품을 빰칠 정도였다. 그는 연구에 몰두할 때는 한 달에 며칠만 회사에 출근하고 그 외엔 집에 틀어 박혀 일에 열중했다고 한다.
재택근무를 벌써 50여년 전에 실천한 사람이다. 그런데 출근을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규율과 규칙을 엄수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돼 있는 일본 사회의 풍토를 고려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불규칙한 근무태도를 용인한 회사 운영의 유연성에 놀랐다. 그는 아마 천재의 기질을 타고난 기술자였던 것 같다.
천재는 단명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1974년 51세에 사망했다. 세계에서 평균수명이 제일 긴 나라가 바로 일본임을 고려할 때 요절한 것을 부인할 수 없겠다. 고객을 마중하러 하네다 공항에 나갔다가 갑자기 사망했다고 한다. 고객은 역시 왕인가 보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고객 앞에선 목숨까지 바쳐야 했으니까. 이공계 기피 풍조에 허둥대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사하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