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항상 새로운 상품을 요구한다. 반도체·컴퓨터·인터넷을 앞세워 발전을 거듭해온 세계 하이테크 시장은 늘 새로운 히트 상품에 목말라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기 위해 IT업체들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세계 하이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2002년 세계 10대 순익 기업’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조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세계 하이테크 산업을 3회 시리즈로 조명한다.
1. 90년대 상식 파괴, 하드웨어는 돈을 못 번다?
2. 미국중심 하이테크, 지금 바뀌고 있다.
3. ‘억대 제품’이 시장을 끈다.
1. 90년대 상식이 파괴됐다.
하이테크 밥을 먹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아들이는 상식이 있다. ‘하드웨어는 만들어봐야 고생만한다.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분야를 해야 돈을 번다’는 것이 그것이다. 실제 하드웨어 분야는 누구라도 물건을 만들어 내다 팔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격렬할 수밖에 없다. 결국 매출을 올려도 이익률이 오히려 떨어질 공산이 많다. 따라서 한번 만들어 두면 팔 때마다 돈이 들어오는 소프트웨어나 시스템을 구축해 주고 정기적으로 ‘수금’할 수 있는 서비스 사업을 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90년대 후반 절대 다수가 주장한 대세였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보도한 ‘2002년 세계 10대 순익 기업’은 이를 뒤집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8위에 오른 델컴퓨터다.
델은 올해 1월을 기준으로 지난해 순이익이 21억2200억달러에 달하며 작년에 비해 19%나 늘어났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가격 경쟁이 가장 치열한 PC시장이 주력인 델은 유통업체를 통하지 않는 직판 시스템을 무기로 경쟁업체로부터 시장점유율을 빼앗고 있다.
미국 시장 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작년 세계 PC수요는 2.7%가 성장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델은 출하대수를 기준으로 18%나 성장했다. 컴팩을 집어삼킨 휴렛패커드(HP)와의 승부에서도 밀리지 않고 있다. 델은 다른 하드웨어인 서버, 스토리지 시장에도 진출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델’의 성장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또 다른 예는 이동전화 단말기 분야 세계 최대업체인 노키아다. 지난해 노키아의 이동전화부문 매출은 거의 정체였다. 하지만 카메라 부착 단말기의 판매가 높아지면서 채산성은 오히려 호전돼 33억2000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같은 노키아의 저력에는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한몫하고 있는데, 엄청난 자금을 아낌없이 차세대 제품에 쏟아부어 노키아는 세계 휴대폰 단말기 시장에서 3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1위의 하드웨어업체가 보여주는 선순환 구조의 좋은 예다. 네트워크 최대업체인 시스코시스템스는 이채롭기까지하다. 돈 못 버는 하드웨어업체를 증명이라도 하듯 막대한 규모의 적자를 껴안고 침몰하던 시스코는 2년전부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라우터 분야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는 시스코는 작년 7월 기준 전년대비 매출은 15% 줄었지만 매출대비 영업이익률은 15%나 확보했다.
‘소프트웨어가 대박’이라는 상식을 부수고 엄청난 순이익을 올리는 이들 3사의 공통점은 각 분야에서 압도적인 파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또 비용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이고도 철저한 노력을 기울여 이익률을 높인 점도 비슷하다. 또한 확실한 하나의 주력 아이템을 갖고 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드웨어 시장은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분야에 비해 진입하기 쉬워 누구나 들어 올 수 있다. 하지만 이들 3사가 말해주듯 ‘확실한 1등’만이 매출 대비 이익률이라는 싸움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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