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인터넷주소와 시장원리

◆이완재 자유기업원 사이버경제연구실장 jae@cfe.org

 

 인터넷주소자원관리법(안)을 둘러싸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정보통신부는 당연히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관련 벤처기업들이나 시민단체, 그리고 정부 내에서조차 일부 부처에서는 만들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지향하고 있는 시장경제원리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 법의 골자는 크게 나누어 정부 주도의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계획 수립 및 시행, (가칭) 인터넷진흥원의 법정화, 주소자원 관련 서비스에 대한 인증제, 도메인 이름 관련 분쟁 해결장치 등 네 가지다.

 정통부가 주소자원 관리계획 필요성을 들고나온 것은 도메인 이름이 소위 공공자원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자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인터넷주소는 다른 사람이 동시에 쓸 수 없다. 그리고 사용료를 내지 않는 사람은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주소자원은 연필이나 사람 이름과 마찬가지로 사적 자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역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 이상이 하나의 주소를 동시에 쓰면 혼선이 일어나기 때문에 각 주소의 유일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그 일은 민간보다 정부가 잘 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주소가 겹치지 않도록만 해주면 된다. 그 이상의 것에 대해 계획하고 개입하는 것은 국민 각자에 대해 정부가 계획한 이름만을 쓰라고 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인터넷주소의 기반이 되는 IP주소의 기술적 확장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라면 이미 한국전산원 같은 곳에서 맡고 있다. 새로운 계획은 아마도 인터넷 이용자의 자유를 속박으로 이어지게 할 가능성이 높다.

 입법예고된 법안에 의하면 정부가 인터넷주소 관리기관을 지정하고 수수료를 규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관리기관의 역할은 주소의 판매와 사후관리다. 법안 초안자들은 관리기관들이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고, 또 부도가 났을 경우 소비자가 사후관리를 받을 수 없음을 염려했을 것이다. 기우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 가격이 높아질 수 없고 소비자들은 싸고 좋은 것을 택한다. 정부가 할 일은 관리기관들끼리의 담합을 막는 것이고, 그 일이라면 이미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오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오히려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동안 정부의 행태에 비춰볼 때 지정 관리기관의 숫자를 제한하고 그들의 이익을 보호할 가능성이 높다. 부도가 날 만한 업체를 가려낼 필요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의 재량권 행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기업은 모두 주소 판매를 할 수 있게 하되, 일정 조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만 탈락시키는 방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지금도 관리기관의 선정과 관련해서 잡음이 많다. 그것만으로도 누군가가 공정위에 제소할 만한 사항이다. 가칭 인터넷진흥원이 법제화된다면 그 마저도 어려워질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허용하고,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을 믿는 것이 시장경제원리에 합당하다.

 또한 법안은 주소자원 관련 부가서비스에 대한 인증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인증이란 정해진 표준이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 그런데 부가서비스는 기업들이 계속해서 창조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표준이 있을 수 없다. 그런 것에 대해 정부가 인증을 시도한다면 결국 기술혁신과 시장창조의 과정을 막는 격이 될 것이다.

 법안의 마지막 부분은 분쟁조정과 관련돼 있다. 인터넷주소와 상표권간의 갈등이 있어온 것은 사실이고, 그것의 해결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혼란을 초래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기존의 상표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을 보완하는 것이 더 소비자 친화적인 것이 아닐까.

 지금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KRNIC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상업용 2단계 도메인의 생성권을 시장에 넘기는 것이다. 누구든지 새로운 2단계 도메인을 만들어서 팔 수 있게 하면 된다. 정부는 그렇게 만들어진 이름이 서로 중복되지 않게만 해주면 된다. 그것을 위해 새로운 법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