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하이테크 산업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과연 미국이 지난 90년대 초강세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다. 미국은 윈텔(윈도+인텔)로 대변되는 파워를 바탕으로 지난 90년대 하이테크 산업의 ‘모든 길을 아메리카로 통하도록’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순이익 기준 세계 하이테크 기업 ‘넘버 10’ 면면을 보면 대답을 ‘YES’ 그리고 ‘NO’다.
우선 작년에도 여전히 미국세는 막강했다. 1위을 차지한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3위 IBM, 5위 인텔, 7위 오라클, 8위 델, 9위 시스코 등 6개사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위세는 전혀 퇴색되지 않은듯이 보인다.
하지만 2위 삼성전자를 위시한 4위 노키아(핀란드), 6위 지멘스(독일), 10위 캐논(일본) 등 나머지 4개 비 미국세 역시 녹록지 않다.
먼저 삼성전자의 존재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톱10에 끼리라고 예상조차 못했던 삼성은 특정분야에 대한 집중투자를 감행, 급속하게 성장했다. 반도체 전체 매출에서 삼성은 세계 최대 기업인 인텔에 이은 세계 2위로 약진했다. 이익액에서는 아예 인텔을 넘어섰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휴대폰 단말기 시장에서도 시장 점유율을 급속하게 높이고 있다.
미국 조사기관인 가트너에 따르면 메모리 최대 업체인 삼성은 지난해 D램 등 분야에서 시장 불황에 부닥쳤지만 고부가가치 제품을 더욱 강화하며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다. 반도체 부문의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 30%을 달성하며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 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이테크 산업의 기간인 반도체 분야에서의 아시아세 태두도 맥을 같이 한다. 미국 반도체공업회에 따르면 91년 미국·일본 이외 지역의 반도체 생산비율은 14%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1년에는 21%까지 확대됐다. 대만의 반도체 위탁 수주 생산업체(파운드리)도 급성장했다. 이번 랭킹에는 얼굴을 내밀고 있지 않지만 파운드리 최대 업체인 TSMC는 지난 2000년 약 20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려 톱10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글로벌화도 비 미국세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여태껏 미국 공룡기업들은 거대한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접수하는 강점을 가져왔다. 하지만 상위를 차지하는 비 미국기업들은 자신들이 속한 내수시장을 넘어서 수출 비율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멘스의 경우 독일 이외 지역 매출이 전체에서 무려 79%에 달한다. 삼성 역시 수출비율이 70%에 이른다. 지난해 자국인 핀란드 매출이 10% 줄어든 노키아는 일본 수출비중을 전체 대비 25%로 끌어올리는 등 부족분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좁은 자국 시장은 더이상 세계 재패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일본도 슬슬 부활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캐논은 지난해(8위)에서 올해 10위 밀려나긴 했지만 순이익은 13억9000만달러에서 16억달러로 늘었다. 또한 일본 IT업계의 자존심 소니는 2001년에 겨우 적자를 면해 체면치레하는데 그쳤지만 이번 3월 회계연도 예상 순익이 15억달러에 달해 11위를 예약하고 있다.
이미 제1막이 오른 ‘미국 vs 비미국’ 대결은 비 미국세가 미세한 차로 미국을 따라잡고 있는 형국이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