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집 대신증권 부사장 hjmoon@daishin.co.kr
정사각형의 모서리마다 달팽이가 한 마리씩 있다고 하자. 각각의 달팽이는 앞에 있는 달팽이의 꼬리를 쳐다보며 시계방향으로 움직인다. 만약 테두리에 있는 길로만 갈 수 있도록 안쪽으로 울타리가 있다면 네 마리의 달팽이는 정사각형 주위의 정해진 길을 따라 계속 돌게 된다. 하지만 울타리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이 문제는 아날로그식으로는 풀 수 없다. 달팽이가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앞에 있는 달팽이도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에 동시에 움직이려던 달팽이들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디지털식으로 풀어보면 간단히 해결된다. 예를 들어 1초에 한발씩 움직인다고 하자. 달팽이들은 앞에 있는 달팽이들의 위치를 확인한 후 그 방향으로 한 발자국을 움직인다. 그리고 다시 쳐다보고 방향을 바꾼 후 다시 한 걸음을 움직인다. 이와 같이 계속 움직이다 보면 달팽이들은 부채꼴 모양의 궤적을 그리며 결국 정사각형 한가운데로 모이게 된다.
올해 8월부터 본격적인 방카슈랑스 시대가 열린다. 보험업무를 은행과 증권사에서도 취급하게 돼 서로 영역을 침범할 수 없었던 울타리가 없어지면서 한 점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진 고객이 은행, 증권, 보험회사를 찾아 거래해 왔지만 앞으로는 한 군데에서 모든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미래에는 경험이 없다. 한 점으로 모이는(convergency) 변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이다. 각 금융기관에서 취급되는 금융상품들이 온라인으로 거래되면서 디지털 컨버전시는 더욱 빨라져 금융기관간 제휴가 가속화될 것이다. 물론 모이기만 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 하나가 그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고객으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휴는 내 약점을 상대방의 강점으로 대체하면서 더욱 강해지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컨버전시는 금융업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 한 점으로 모이는 현상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