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일본-니혼게이단렌, 임원진 대폭 교체

 일본 재계의 리딩 그룹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니혼게이단렌:日本經團連)’가 부회장을 포함한 임원진의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선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니혼게이단렌은 회장 1명에 15명의 부회장 그리고 자문기관인 평의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7명의 부회장과 평의원회 의장 1명, 부의장 4명을 새로 내정, 오는 5월 27일 정기총회에서 정식 선임할 예정이다.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IT 관련 업계 대표들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니혼게이단렌의 임원진은 은행, 상사, 전기 등 주로 금융권이나 제조업 총수들이 독차지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IT가 점차 중요해지는 산업구조의 시대적 흐름이 보수적인 니혼게이단렌이 인사에 반영했다는 시각이다.

 새 임원진 중 ‘재계의 이단아’라 불리는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65)의 부회장 등용은 재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니 내에서도 그는 컴퓨터나 휴대폰사업보다는 게임 및 영화사업에 더 정성을 쏟고 있다. 미국·유럽 사정에 밝은 글로벌CEO인 그의 풍부한 해외경험과 세련된 경영철학이 ‘제조업 중심에서 부가가치 창출사업으로’ 일본 경제의 축을 바꾸려는 일본경제계의 기대감과 잘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또 와다 노리오 NTT 사장(62)이 정통 IT업체로서는 처음으로 니혼게이단렌에 입성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끈질긴 집념과 뛰어난 협상력으로 수익성 없는 PHS사업을 과감히 정리했으며 NTT동서일본의 분사를 적극 추진한 주인공이다. 니혼게이단렌의 부회장으로 입지를 굳힌 그가 ‘IT업계의 대변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밖에도 부회장에 내정된 소야마 에쓰히코 히타치제작소 사장(67)을 비롯해 평의원회 의장 모리시타 요이치 마쓰시타전기산업 회장(68)과 가쓰마타 쓰네히사 도쿄전력 사장(63) 등이 IT 관련 업계 인물들이다.이들과 함께 니시무라 타이조 도시바 회장(67)과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67)은 유임됐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수의 임원 교체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썩 알찬 인사라는 평을 듣기에는 다소 무리라고 일각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밑도 끝도 없는 경제불황의 늪에서 하루 빨리 탈출하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본내에서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인사는 개혁보다는 말그대로 안정에 무게중심을 둔 무난한 인사라는 점에서 이러한 재계의 기대치와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불만을 일부에서는 제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이미 많은 임원진을 배출한 명문기업 출신의 회장단들이 대부분이라 인물의 참신성에서도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엄격히 말하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는 것이다. 유통업이나 서비스업 등 이른바 뉴비즈니스 업종 출신이나 중견 중소기업 대표들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재계의 입으로 통하는 경제동우회의 개혁적, 파격적 인사와는 너무나 비교적이라는 후문이다.

 오쿠다 세키 회장(도요타자동차 회장·70)이 이끌고 있는 현 니혼게이단렌은 2002년 5월에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1946년 발족)와 일본경영자단체연맹(닛케이렌, 1948년 발족)이 상호 유기적 협조를 위해서 하나로 통합되면서 만들어진 일본 최대의 경제 이익단체다. 때로는 정경유착 등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니혼게이단렌의 한마디 한마디가 일본 경제를 주름잡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러한 니혼게이단렌의 이번 인사단행으로 회장단의 평균연령은 68.3세에서 67세로, 평의원회는 69.6세에서 67.6세로 1, 2세 가량 젊어졌다. 지금까지 연공서열을 중시해 왔던 일본의 기업풍토도 이제는 많이 바뀌고 있는 터인지라 이들의 노익장이 얼마나 더 먹혀들어 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