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집 <대신증권 부사장 hjmoon@daishin.co.kr>
기업이나 국가간의 경쟁을 100m 달리기와 비교해 보자. 100m 달리기의 경우 출전한 모든 선수가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출발선에 서 있어야 하고 심판의 출발신호가 있기 전에는 그 어떤 선수도 먼저 뛰어 나가서는 안된다. 부정출발 두번은 탈락이라는 가혹한 처벌이 주어진다. 이것이 공정한 경기를 가능케 하는 룰이다. 하지만 기업이나 국가간의 경쟁은 그렇지 않다.
1997년 온라인 증권거래가 시작됐을 때 각 증권사는 사내에서 영업사원이 사용하던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시장에 내놓았다. 그 시기에는 어떻게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었고 다만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룰이 있을 뿐이었다. 100m 육상경기와는 달리 심판이 출발신호를 울렸을 때(97년 온라인 증권거래가 시작됐을 때) 어떤 증권사는 라커룸에서 신발끈을 매고 있었고 또 어떤 증권사는 출발선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이미 준비를 끝낸 증권사는 50m 선상을 달리고 있다고 하자. 누가 먼저 결승점을 통과할 것인가는 물어 볼 필요도 없다. 더구나 심판에게 왜 준비도 안됐는데 총을 쏘았냐고 항의할 수도 없고 한번 더 하자고 얘기할 수도 없다. 국가나 기업간의 경쟁은 분명히 100m 육상경기와는 다르다.
시장에서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50m를 앞서 달린 증권사가 온라인 트레이딩 시장에서 표준이 되고 고객의 선택을 받아 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무조건 열심히 뛴다고 되는 건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학습돼 있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IT산업은 메모리반도체, CDMA, 초고속통신, 디지털TV, 온라인게임, e트레이딩 등 많은 부분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면서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체력(자본)과 지구력(시장)을 가지고 있는 경쟁자와 계속해서 싸워 이기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며 그들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서는 안된다. IT산업은 꾸준히 달리는 마라톤보다는 한 순간에 온 힘을 다해 달리는 100m 달리기를 해야 한다. 적어도 2∼3개의 개발팀이 끊임없이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신상품(표준)을 만들면서 시장을 주도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준비된 자가 100m 달리기에서 출발을 알리는 총을 쏘게 될 것이다. 변화를 창조하는 순간이다. 기업이나 국가간의 경쟁에선 이것이 곧 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