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의장을 맞이한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의 향후 행보에 세계 네티즌 및 인터넷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신임 의장은 미국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ICANN의 인터넷 주소관리 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보수적·관료적이라는 그동안의 비판을 털어버리고 ICANN의 개혁도 한층 신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2월 내부 선발위원회를 구성해 의장을 물색해온 ICANN 이사회는 지난 19일(현지시각) 호주정부 관료 출신 폴 터메이를 새 의장으로 선임했다. 이로써 터메이는 스튜어트 린 의장에 이어 이달 27일부터 ICANN을 이끌어가게 됐다.
터메이는 호주 정부와 컨설팅 업체 매킨지, 벤처인큐베이팅 업체 아르고퍼시픽을 거쳐 최근까지 ICANN의 정부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미국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지난 98년 출범한 ICANN은 짧은 연혁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창기 자리잡는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계속 수장을 맡아왔다. 린 의장과 그에 앞선 마이크 로버트 의장도 모두 미국인이었다.
ICANN은 특히 미 상무부에 의해 감독받고 있어서 미국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상무부와 계약을 맺고 도메인네임시스템(DNS)을 관리하는 게 바로 비영리기구인 ICANN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정책결정에서 다소 독립성을 인정받지만 최종적인 DNS 관리는 상무부의 소관으로 돼 있다. 때문에 ICANN은 네티즌들로부터 “미국 인터넷 정책의 대변자”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기에다 과거 린 의장은 ICANN을 보수적이며 폐쇄적으로 운영해왔다는 비난을 받았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의 인터넷 개입을 찬성하고 네티즌이 직접 선출하는 이사 선거를 거부하는 등 ICANN의 문호를 넓혀야 한다는 일반 네티즌의 목소리를 등졌다는 것이다.
미 의회 조사기구인 일반회계국(GAO)은 또 다른 비판을 덧붙인다. 린 의장이 주도하는 ICANN이 비밀스럽고, 보안상의 허점을 차단하는 데 기동력이 떨어지며, 너무 느슨하게 규제받는 등 많은 운영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GAO는 ICANN에 대해 “DNS의 민간부문 관리자로서 정통성과 효율성이 매우 의심스럽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린 의장이 서둘러 조직재편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 안은 네티즌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한 것은 물론 미국 정부의 공감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 이를 기화로 ICANN이 미국 정부와 네티즌 사이에 끼이면서 인터넷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ICANN을 완전히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되기도 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출범한 ‘터메이호’에 거는 내외부의 기대는 예사롭지 않다. 일단 터메이는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내부로부터 받고 있다. ICANN 빈트 서프 이사회 의장은 “민간기업과 정부에서 그의 경험은 ICANN에 굳건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터메이의 선임은 향후 ICANN의 방향을 점칠 수 있게 한다.
그는 무엇보다 ICANN 운영에 투명성을 높여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ICANN 의장수락의 변에서 “개방성을 확대하고 조직 안팎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ICANN 관계자들은 터메이가 일반 네티즌 및 인터넷 기구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일반자문위원회와 긴밀한 관계를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미국 등 선진국 일변도의 ICANN이 세계 네티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단체로 거듭나도록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각론적으로 터메이는 자신이 DNS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찬성했다는 소문을 일축했다. 아울러 영어 이외의 언어로 된 도메인네임의 사용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밖에 인터넷 주소자원을 대폭 확대시킬 수 있는 IPv6의 도입도 추진하고 닷헬스처럼 새로운 톱레벨 도메인네임의 활용도 검토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터메이의 승선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던 ICANN호 순항을 위한 기반을 어느 정도 잡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업계 최상위 단체로서 도약을 위해서는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섰다”는 평가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