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여의도공원 앞 CCMM 빌딩 10층. 통신장비업체인 코리아링크의 직원들은 근무시간 내내 일을 하지 못했다. 전날 신한은행 서여의도지점과 외환은행에 돌아온 17억원과 19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자칫하면 최종 부도로 갈 수 있어서다. 이러한 염려는 현실로 이어져 결국 코리아링크는 이날 저녁 4월 1일자로 최종 부도 처리됐다고 공시했다. 국내 통신산업계가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장비와 단말기는 물론 서비스업계도 캄캄한 앞날에 어쩔 줄 몰라한다. 지난달 24일엔 단말기업체인 스탠더드텔레콤이 부도를 냈고, 27일엔 초고속인터넷업체인 두루넷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춘래불사춘.’ 개나리는 활짝 폈으나 통신산업계는 아직도 한겨울이다.
◇위기의 본질은=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국내 통신산업이 위기에 직면한 것은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에다 통신산업 정책의 실패에다, 구조조정 실기, 방만한 투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야 국내에만 해당된 게 아니나 정부의 정책실패와 통신업체의 내부경영 혁신 부재는 막을 수도 있었다. ‘천재’가 아니라 ‘인재’인 셈이다.
정보통신부는 PCS와 IMT2000 등 이동통신산업과 초고속인터넷 등을 통해 IT강국을 만들었으나 문제가 있을 때마다 땜질식의 처방으로 IT강국의 빛을 바래게 했다. WCDMA 등 차세대 통신서비스의 지연과 보조금 금지 제도 등으로 국내 장비와 단말기 내수 시장은 위축됐고 그간 쌓인 부실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다. 서비스 정책도 선후발 사업자간 균형 발전에는 철저히 실패했다. 비대칭 규제니 유효경쟁이니 하며 후발사업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약속했으나 선후발 사업자간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서비스 선도→국내 시스템 수출→세계 시장 주도라는 통신정책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구조조정중=상황이 심각해지면서 통신업계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 두루넷은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LG는 파워콤·데이콤에 이어 하나로를 묶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나머지 사업자들도 내부적으로 사업을 재검토하면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서비스업체뿐만 아니라 장비와 단말기업체들도 구조조정중이다. 사업을 축소하거나 아예 사업을 접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법제도적 제약 조건이 많은 데다 업체간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때문이다.
안형택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조조정이 자율적으로 이뤄지면 좋겠으나 현 통신산업계의 경우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서 “정부가 효율적으로 개입해야 가입자 피해, 연쇄부도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퇴출기업을 인수합병(M&A)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절히 유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엄격한 서비스역무 구분, 통신산업 수직결합 금지 등 기존 제도를 과감하게 수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