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는 등 전반적인 침체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경제, 전자, IT분야의 세계적 대국이다. 미국의 위세에 휘둘리고 있지만 여전히 거인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발 최신 기술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것에서도 이는 여실히 증명된다. 침체 속에서도 건재를 과시하는 일본 IT업계 이면의 모습은 업계에 새로운 자극을 줄 것이다. 본지 일본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성호철 기자는 이번주부터 매주 금요일 독자여러분에게 ‘IT일본’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것이다.
다음 사진을 보고 누군지 알아본다면 당신은 ‘로봇 마니아’다. 소니에서 로봇 파트를 도맡고 있는 도이 도시타다 소니 집행위원 상무(61)다. 그가 들고 있는 게 바로 ‘로봇’의 새 장을 연 ‘아이보’다.
도이 상무는 IT업계에서도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기도 하다. 80년대 초 CD를 개발한 기술자다. 80년대 후반 유닉스 워크스테이션 ‘NEWS’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로봇에 뛰어든건 지난 93년 10월이다. 그는 미국에서 개발된 ‘겐기스’라는 6개의 발을 가진 로봇을 보고 ‘이거다!’했다. 당시 소니정보통신연구소장이었던 도이 상무는 몇몇 기술자에게 제안을 했고 그들은 뛸듯이 기뻐했다.
당시 참여했던 후지타씨는 “소형모터, 알루미늄판, 기판플랫폼 등을 후딱 사와서 ‘소니판 겐기스’를 만들었지요. 재료비가 전부해서 13만엔(약 130만원) 정도였어요”라고 회상했다.
문제는 소니 내부의 만만치 않은 반발이었다. 당시만해도 로봇이라면 산업용이나 군사용의 실용적인 제품(?)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쓸모’를 고려하지 않은 로봇을 만든다고 한 것이다. 도이 상무는 이때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지난 82년에 개발한 CD로 소니에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었고 그런 그가 끝까지 버티니 소니도 손을 들었다고 한다.
지난 97년 애완용 로봇 ‘아이보’가 태어나고 99년 6월 예약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25만엔이던 아이보가 반년만에 4만5000대가 팔렸다. 110억엔(약 1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일본다운 로봇 신화가 시작됐다.
‘쓸모는 없지만 즐거운 로봇’이 바로 일본다운 로봇산업이다. 이후 혼다의 ‘아시모’를 비롯해 세계를 경악케한 이른바 ‘휴먼 로봇’이 일본발로 속속 등장했다.
‘일본다운 로봇’은 실은 컴퓨터 시대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컴퓨터의 발전은 1940년대 포탄의 탄도계산에 적용되는 등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급속히 발전했다. 도이 상무는 “컴퓨터의 효율 추구 시대는 이제 끝난 게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발상은 도이 상무가 처음은 아니다. ‘바로 재패니메이션’의 신으로 불리는 데츠카 오사무가 먼저다.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1962년 애니메니션, 만화는 52년)이 인간의 친구인 로봇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애니메이션 속에서 정해진 아톰의 생일이 바로 2003년 4월 7일이다. 도이 상무가 아톰의 꿈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로보덱스(Robodex:Robot Dream Exposition) 2003’이 어제 개막돼 6일까지 요코하마에서 열린다. 로보덱스는 세계 최초의 산업용이 아닌 파트너 로봇 전시회다. 일본사람들이 키운 ‘휴먼 로봇의 꿈’은 그들만이 아닌 우리들의 꿈이기도 하다.
<성호철 hcs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