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7일.’ 오늘은 일본인들에게 아주 각별한 날이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던 ‘우주소년 아톰’이 탄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일본열도 전체가 오랜만에 ‘아톰 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탄생배경=원래 ‘2003년 4월 7일’은 일본 만화계의 대부이자 아톰을 빚어낸 고 데즈카 오사무 감독이 상상으로 설정해 놓은 탄생일이 실제 현실의 날로 다가온 것이다. 과학성 장관이자 천재 과학자인 덴마 박사가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 ‘도비오’와 꼭 빼닮게 소생시킨 로봇이 바로 아톰이다.
이 때문에 아톰은 신장 135㎝에 몸무게가 30㎏으로 만들어져 조그만 꼬마아이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아톰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녔다. 원자력을 동력으로 로켓추진방식으로 하늘을 나는 아톰은 자그만치 10만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또 인간보다 1000배 이상의 청력을 지녔으며 60개에 달하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조그마한 체구로 거대한 악당들을 물리치는 아톰의 당찬 모습은 2차 대전의 상처로 무기력해진 전후 일본인들에게는 ‘희망 그 자체’였다.
아톰은 1951년 4월 월간잡지 ‘소년’에 만화로 연재되면서 세상에 데뷔하게 된다. 그 긴 역사에 걸맞게 지금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세상에 회자되었다. 아톰에 대한 모든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데즈카 프로덕션(http://www.ja-f.tezuka.co.jp)에 의하면 “데뷔당시의 제목은 ‘아톰 대사’였으며, 이 ‘아톰 대사’에 조연으로 등장한 ‘로봇 아톰’이 1954년 4월호부터 주연으로 나오면서부터 제목이 ‘무쇠팔 아톰’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톰이 일본의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63년부터 193회에 걸쳐 4년간 TV에 방영되면서부터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타이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63년 아톰이 미국에 처음 방영되면서 ‘아스트로 보이 아톰(Astro Boy ATOM)’이라는 영문 타이틀이 그대로 통용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간주된다.
◇생일맞이 분주=이러한 아톰 탄생을 즈음하여 일본의 각 지역에서는 다양한 생일맞이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먼저 아톰의 탄생지로 설정된 과학성 정밀기계국이 있는 곳인 도쿄 신주쿠구 소재 다카다노바바 역 앞에는 이미 일주일 전부터 대형 전광판이 들어서 아톰 탄생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신주쿠구는 전야제 행사 때 아톰에게 ‘미래특사 임명장’을 수여했다.
또한 JR동일본은 ‘돌아온 아톰’을 그냥 놔두지 않겠다며 아톰홍보에 극성이다. 아톰 캐릭터가 박힌 승차권 카드를 1만5000장 한정 판매하고 있다. 신주쿠역 등을 포함한 도쿄내 10개 주요 JR역에서는 아톰과 여타 등장 캐릭터들을 역사에 등장시켜 승객들에게 스탬프를 찍어 주면서 열쇠고리나 아톰 설계도 같은 기념품을 전달하는 ‘깜짝쇼’도 3월 20일부터 5월 11일까지 실시한다.
여기에 이미 3월 1일부터 JR 다카다노바바역에서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아톰의 주제곡을 전철의 발차에 맞춰 내보내면서 승객들로 하여금 향수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행진곡풍의 노래로 안전성 확보에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역 관계자는 “다소 염려는 되지만 4월 7일 탄생일이 지난 후에도 당분간은 계속 내보내 아톰 탄생의 흥을 계속 북돋울 것”이라고 밝혔다.
교토에 있는 데즈카 오사무 기념관에서는 작년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아톰의 탄생 순간’을 기리기 위한 각종 기념행사가 거행되는 등 전국 각지에서 ‘아톰축제’가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뿐만 아니다. “32캐럿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1억엔(약 10억원) 상당의 미니 아톰 모형이 도쿄 다카시마야 백화점에 전시되는가 하면 신작 TV 애니메이션용 아톰의 배경무대가 될 사이타마현에서는 아톰에게 특별 주민등록증까지 발부했다”고 교토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조만간 아톰을 안방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방 후지TV가 6일부터 장장 50회의 특집 방영을 시작했다.
◇로봇산업발전에 일조=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의 로봇기술 이면에는 일등공신 아톰이 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 로봇역사에서의 아톰이라는 존재는 크다.
일본의 로봇기술은 전통적으로 ‘어떻게 하면 보다 인간에 가까운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이러한 면에서 아톰을 ‘인간형 로봇의 원조격’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록 아톰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까지밖에 발전하지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선악을 느끼며 판별할 수 있는 ‘사이보그형 로봇’이다. 현재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혼다의 아시모를 포함해 이미 출시된 인간형 로봇들의 직접적인 모델이 된 것이 바로 아톰이라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일본에서는 산업현장에서 인간과 함께 일하는 로봇뿐만 아니라 복지, 경비, 도료작업, 용접공 로봇 등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축구시합이나 오케스트라 연주까지도 가능한 로봇도 머지않아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로봇산업은 아톰 덕분에 철저하게 ‘인간과의 협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자키 마사모토 일본로봇공업회 회장은 최근 니혼코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구에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이 괴물형체이거나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이미지의 로봇인 반면, 일본의 로봇은 인간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며 “아톰이 이러한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과학기술창조입국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일본정부는 이러한 ‘아톰 바람’이 로봇산업 육성붐에 일조할 수 있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다. 이 때문에 4000억엔(약 4조원) 규모에 그쳤던 작년도 로봇시장 출하액을 올해는 훨씬 웃돌 것이라는 낙관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편 ‘덴쓰소비자연구센터’는 향후 3년간 아톰 관련 시장규모가 거의 5000억엔(약 5조원)을 육박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처럼 한 만화가의 상상에 의해 설정된 ‘아톰특수’로 로봇산업만이 아니라 불황에 허덕이는 일본경제 전반이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가 적지 않다.
과연 ‘작지만 매운’ 아톰이 전후 패전국 일본을 일으켜 세웠던 것처럼 전에 없는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일본을 구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후지TV가 제작한 아톰탄생 장면.
도쿄 다카시마야백화점에 전시된 1억엔 상당의 다이아몬드 아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