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을 대여받고 싶으면 IBM에 가보세요.”
분명 농담처럼 들리는 이 우스갯소리가 컴퓨터업계 거인 IBM이 자랑하는 미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남부 알마덴 연구소(Almaden Research Center)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서서히 연구방향을 IBM의 대고객 컴퓨터 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한때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로 고립된 이 상아탑에서 근무했던 연구소 직원들은 이제 IBM 서비스 사업부 직원들과 함께 고객사를 찾아가 그들이 원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등 현장경험을 쌓고 있다. IBM의 새뮤얼 팔미사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가을 컴퓨터 서비스 사업을 강조한 ‘온 디맨드 서비스(on-demand services)’ 전략을 발표하며 향후 3년간 이 서비스를 위해 1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전격 선언한 바 있다.
IBM의 매출 및 수익 효자인 서비스 사업부는 팔미사노 CEO의 ‘온 디맨드 서비스’ 전략을 구체화하는 전위대로서 고객사들에 대한 지원을 도맡고 있다. 글로벌 서비스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IBM의 컴퓨터 서비스 사업부는 지난해 4분기에 IBM 총매출 237억달러 중 44%를 차지할 정도로 회사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 사업부의 매출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에 불과했다.
IBM이 이렇게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에서 컴퓨터 서비스 분야로 사업의 중심축을 옮기면서 연구소 역시 새로운 분야로 초점을 맞추는 등 혁신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IBM측은 오는 2005년까지 약 200명의 IBM 연구원들이 ‘서비스 연구-컨설턴트(services research-consultants)’라는 직함을 가지며 전자 마케팅, 소매사업자를 위한 데이터 마이닝, 자동화된 품질보증 서비스에 대한 통계분석 같은 고객사들이 원하는 모든 서비스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IBM의 경쟁사들은 “고객사들과의 계약 체결에 연구원들을 활용하는 것은 결국 고객사들이 값비싼 컨설턴트 군단에 의해 압도되도록 만드는 방식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러나 IBM의 알마덴 연구소 소장 로버트 모리스는 “우리는 연구원들을 내보내면서 ‘당신은 이제부터 컨설턴트 역할을 해라’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지 않다”며 “연구원 스스로 고객들에게 유용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종종 이런 접촉을 통해 그동안 수행돼온 연구의 본질을 더 잘 알 수도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IBM 연구소가 20년 전쯤에는 하드웨어 개발에 주력했었지만 점차 수익성이 높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쪽으로 사업의 중심을 옮겨가면서 연구소의 성격도 변하고 있다”고 덧붙이며 “이 때문에 현재 연구소의 절반 정도가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그룹은 세계 기술 서비스 시장이 하나의 산업으로서 지난해 5570억달러에서 오는 2006년에는 7370억달러로 증가하면서 연간 6%대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트너 애널리스트 알리에 영은 “연구능력을 보유한 대형 기업들이 특히 서비스 분야에서의 혁신을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등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며 “서비스업체 중에서도 IBM은 방대한 연구개발 기반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 존재”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IBM의 일부 연구원들은 고객사들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이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반영해 IBM 경영진은 모든 연구인력이 고객사들과 직접 접촉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IBM은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좀 더 배양할 필요가 있는 일부 연구원들에게 이런 일을 맡기고 있지만 연구원 중에서 스스로 이런 일을 자임하고 나서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언급했다.
알마덴 연구소의 데이터베이스 전문가인 가이 로먼은 “증권사와 같은 고객사를 방문하고, 여기서 IBM의 데이터베이스의 소프트웨어 충돌방지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면 개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일이 즐겁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가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접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이는 차세대 소프트웨어가 발전해 나가야 할 방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IBM의 서비스 연구 프로젝트는 대단히 광범위하다. 투자은행 JP 모건은 50억달러에 달하는 IBM과의 아웃소싱계약 일환으로 IBM의 서비스 연구-컨설턴트들과 공동으로 협력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
IBM의 수리모델 연구팀장 제인 스노든은 핀란드 항공사 핀에어도 웹 사이트나 항공권 자동발매기 같은 전자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활용, 주고객층을 공략하는 방법을 고안해내기 위해 IBM 연구진과 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우리가 즐기게 되는 성취욕 중 하나는 바로 연구실 안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 훨씬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점들과 직접 대면하는 것” 이라며 “핀에어에 우리 연구원들은 통계적 모델링과 같은 지식을 이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IBM의 온 디맨드 서비스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페기 커넬리 부사장은 연구소의 어떤 팀은 한 백화점업체와 함께 고객의 통행 데이터를 분석중이라고 설명했다. 백화점 각 점포의 보안 카메라는 상점에 고객이 왔을 때 무엇을 하는 지, 또 어디로 걸어가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비디오 자료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면 이 점포는 어떤 방식의 제품 전시방식이 가장 효과적인지, 또 얼마만큼의 제품이 배치돼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고 커넬리 부사장은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알마덴 연구소 전문가 사이에서는 ‘데이터 마이닝’이라고 부르는 연구 프로젝트다.
커넬리 부사장은 “분석에서 고려할 변수가 대단히 많은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에는 수리 분석가들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며 “이를 통해 고객들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결과와 이론을 실제 사례에 적용해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프로젝트는 한 자동차회사가 고객 품질보증 서비스에 대한 자료분석을 IBM에 요청한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서비스 기록과 고객이 요청한 서비스를 제공했던 기술자의 개인적 견해를 서로 결합시켜야만 했다. IBM 연구원들은 이들 견해 속에서 어떤 유형을 찾아낸 뒤 이 회사에 정량분석자료와 향후 품질보증 서비스 요구에 대한 예측자료를 제공할 예정이다.
휴렛패커드(HP)의 서비스 사업부 부사장 앤 리버모어는 IBM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종의 ‘트릭’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있다. 그는 HP가 서비스 연구개발 현황을 공표하지 않고 있지만 이미 지난 80년대 이후 꾸준히 이 분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또 모든 지역에서 HP 연구소 인력들이 대고객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IBM의 커넬리 부사장은 “ 컨설턴트와 연구원 사이의 협력이 늘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따라서 외부적인 압력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연구-컨설턴트 요원화 전략은 이들의 근무시간 중 절반은 연구에,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고객을 위해 할애하도록 해 IBM과 고객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커넬리 부사장은 설명했다.
IBM의 알마덴 연구소는 지난 1월 연구소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서비스 사업부 직원을 교육시키는 행사를 가졌는데, 당시 이 자리에 참석했던 서비스 사업부 데니스 마시아스 컨설턴트는 “알마덴 연구소로 옮겨와서 모든 최신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뻤다”고 반색했다.
알마덴 연구소 외에 세계 6개국에 있는 IBM의 주요 연구소들도 이같은 서비스 연구 프로젝트에 동참할 예정인데, 커넬리 부사장은 “IBM이 농담조로 연구원들이 ‘대여된다’고 하지만 결코 그런 느낌을 갖지 않게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우리가 추진하는 것은 결고 ‘끼워맞추기식’ 해법이 아니다”며 “결코 연구원들을 영업인력으로 변신시키고자 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제공=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