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집 대신증권 부사장 hjmoon@daishin.co.kr
대학원에서 논문을 준비할 때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느라 고민한 적이 있다. 첫번째는 아무도 발표한 적이 없는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마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처음 발표하는 것 같은 경우인데 이럴 경우 십중팔구 졸업하기 어렵다. 교수도 모르는 이론을 누가 심사할 것인가.
두 번째는 남이 한 것을 다시 한번 해보는 것이다. 즉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졸업하기 만만치 않다. 대상을 잘못 선정하거나 입증할 만큼 뛰어나지 못할 경우 졸업은 불가능하다. 세 번째는 남이 만든 이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심사하는 교수도 잘 이해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천재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 일찍 졸업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기업은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하게 되는데 다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방법이다.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서 경쟁력을 유지해가는 것으로 많이 변화 시키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두 번째 방법은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즉 바뀐 것보다 바뀌지 않은 것이 많은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지금까지는 없던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조직 상하간 서로 잘 이해할 수 있는 변화기 때문에 내부에서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내부에서 결정되기보다 외부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진입 장벽이 높고 천천히 변하는 산업은 프로세스 혁신이나 리엔지니어링 등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시장에서 연속적인 우위를 지속할 수 있다. 하지만 IT산업이나 IT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은 변화의 속도가 빨라 위기와 기회가 자주 찾아오게 된다.
기업이 대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어떤 경우든 졸업하지 않고 계속 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코스닥 증권시장에 등록된 많은 IT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해 어려움에 처해 있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글로벌 경쟁력을 갖지 못했고 그나마 선점한 시장도 점진적 변화를 통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환경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다. 지금이 바로 구조적인 변화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려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때다.